어르신 票 구애하면서… 재탕·삼탕에 현실성 없는 공약

입력 2016-04-02 04:00

“투표하긴 할 건데 출근하는 날이라 투표할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1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임모(72)씨는 재활용품을 포대에 담느라 분주했다.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월급 8만원을 더 받기 위해 손들어 얻은 가욋일이라고 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받지만 더해봤자 50만원에 못 미친다. 18평 연립주택 말고는 따로 모아둔 돈도 없다. 임씨는 “어렸을 적 고생을 많이 해서 일은 할 만한데 요즘은 늙은 사람 잘 안 쓰려고 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정치권이 4·13총선을 앞두고 노인을 겨냥한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60대 이상 유권자는 984만명으로 전체 유권자(4206만명)의 23.4%에 이른다. 투표율 역시 높다. 19대 총선에서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68.6%로 20대 투표율(41.5%)보다 20% 포인트 이상 높았다.

◇일자리 늘린다고 하는데=새누리당은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다. 매년 노인 일자리 10만개를 만들어 2020년까지 78만7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노인친화기업 지정, 노인생산품 구매 권장 등의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지금도 시행되고 있는 ‘헌 공약’으로, 뚜렷한 성과가 없는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노인 일자리 증가를 약속했다. 아동 등하굣길 안전 지킴이, 급식 도우미, 보육 도우미, 택배 수령 대행 서비스 등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 일자리 100만개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양당의 일자리 창출 공약들은 일자리의 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인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다”며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초연금 정말 더 받을 수 있을까=더불어민주당은 기초연금 인상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재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를 위해선 연간 6조4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더민주는 재정개혁, 복지개혁, 조세개혁 등 3대 개혁을 통해 이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재원 조달 방안이 포괄적, 원론적이라 유권자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기에 부족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당시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일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선 이후 취소한 전례도 있다.

◇재탕 삼탕 새로울 것 없는 공약=새누리당은 노인복지청 신설도 공약했다. 현재 15개 정부 부처에 흩어진 노인 복지 업무를 일원화해 통일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내건 공약을 재탕한 무성의한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 역시 새로울 것 없는 공약을 내놓은 건 마찬가지다. 국민의당은 노인 일자리 수당을 현재 월 20만원에서 40만원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공약과 같은 내용이다.

◇하류 노인은 늘어만 가는데=지난해 일본에서는 빈곤층 노인의 실상을 담은 ‘하류노인(下流老人)’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책 인기 덕분에 ‘하류노인’이란 말은 빈곤층 노인을 뜻하는 신조어가 됐다. 빈곤한 노년층과 독거인구 증가 등 노인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는 일본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노인 문제 역시 덜하지 않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9.6%(2012년 기준)로 회원국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19.4%였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어르신 틀니 공약이 지켜지는 데 30년이 걸렸다”면서 “한국 사회에서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원 조달 방안과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담긴 공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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