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소비자의 지역적 충성도가 아주 높은 상품이다. 그 이면에는 ‘자도주(自道酒) 의무구매’ 제도가 있다. 정부는 1973년 소주시장의 과열 경쟁과 품질 저하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주요 시·도별로 1개 업체에만 생산권을 주고, 생산량의 50%를 해당 시·도에서 반드시 소비토록 했다. 흔히 ‘자도주’로 불리는 이 정책으로 254곳이었던 소주업체는 11곳으로 크게 줄었다. 서울·수도권의 진로를 비롯해 보해(광주·전남) 대선(부산) 무학(울산·경남) 한라산(제주) 금복주(대구·경북) 등이 명맥을 이어온 주요 업체들이다. 96년 ‘자유경쟁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자도주’가 폐지됐음에도 이들 업체는 기득권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공고한 위치를 고수했다. 특히 다수의 충청권 업체들이 대기업의 공세에 무너진 데 비해 부산의 대선을 제외한 영호남 기업들은 비교적 잘 버텼다. ‘강한 지역적 유대감’을 그 이유로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구·경북에서 금복주의 시장 점유율은 60% 정도다. 사실상 독과점이다. 소주업체가 200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전쟁 수준의 시장싸움을 벌였음에도 금복주는 늘 일정 수준을 지켰다. 여기에는 ‘고향 술을 마셔줘야지’라는 지역 정서가 한몫했다고 한다.
금복주는 대구·경북에서 술 회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향토기업으로 여겨진다. 59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지역 사회에 기여한 공이 적지 않다. 80∼90년대 초 지역 대학 출신들이 취업할 수 있는 대구의 몇 안 되는 건실한 기업 중 하나였다. 창업자인 고 김홍식 회장에 이어 아들인 김동구 현 회장까지 부자가 각각 11대·12대, 21대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다.
금복주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결혼한 여직원에게 퇴사를 종용한 일이 최근 알려지면서 엄청난 질타를 받고 있다. 회장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사내 성평등 문화를 바로세우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으나 늦었다. 대구 시민들의 실망감을 넘어 전국적인 불매운동까지 전개되는 조짐이다. 그야말로 한방에 훅 갔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경영자의 무지가 낳은 결과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기업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금복주의 무지
입력 2016-04-01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