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3월은 초목이 새로운 성장을 시작하는 시기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서는 ‘삼월은 모춘이라 청명(晴明), 곡우(穀雨) 절기로다’라고 전해오고 있다. 아름답고 기쁜 달이라 하여 희월(喜月)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생명의 부활을 한껏 펼치고 가장 무르익는 계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예로부터 논·밭두렁의 가래질을 시작하고 나무를 심거나 채소의 씨를 뿌리는 무렵인 한식날에 불(火)을 피우지 않고 찬밥(寒食)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삼아 자손들이 저마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은덕을 추모하며 한식으로 차례를 올리고, ‘손 없는 날’이라 하여 조상 묘의 풀을 베는 사초를 하거나 새 잔디를 다시 입히는 중요한 날로 여겼다. 세종대왕도 재위 13년 한식날 화재 방지를 위해 불 사용을 금지했다.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한 것은 1949년이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날이고, 조선시대 성종 대왕이 농림업 장려를 위해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직접 농민의 밭을 갈았던 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또 나무를 심고 자라게 하는 데 일년 중 가장 좋은 시기라는 역사·과학적인 이유로 나무 심는 날로 지정된 것이다.
광복 이후 우리 산림은 황폐화가 극에 달했다. 산은 나무가 없는 죽음의 땅,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모지였다. 1973년부터 20년간 치산녹화 계획을 수립해 최선을 다한 결과 목표를 5년이나 앞당겨 1987년 국토 녹화를 끝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고 했으며,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은 ‘플랜B 2.0’이라는 저서를 통해 “한국의 산림녹화는 세계적인 성공작”이라고 격찬했다.
현재 울창한 산림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대통령부터 일선의 정책 담당자와 국민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정성이 합쳐져 이뤄진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순간에 산을 황폐화시킬 수 있는 산불로부터 푸른 산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식목일은 나무를 심는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날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식목일과 청명·한식을 전후해 최근 10년간 연평균 20건, 183㏊의 산불이 발생했다. 2002년 식목일에는 하루에 무려 63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안타까운 손실이다.
2000년 여의도 면적의 82배에 달하는 2만4000여㏊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어 단군 이래 최대 산불로 불리는 동해안 산불, 2005년 낙산사를 전소시키면서 국민의 가슴까지 불태웠던 양양 산불도 모두 식목일과 청명·한식 전후로 발생했다.
산불은 논·밭두렁 또는 쓰레기를 태우거나 무심코 버린 담뱃불에서 시작된다. 지난해 발생한 산불 623건 중 논·밭두렁 및 쓰레기 소각이 185건으로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동부지방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농업기술센터, 숲사랑연합회 등 민·관 합동으로 손을 맞잡고 소각산불로부터 국민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응태세를 기울이고 있다.
아름다운 산림은 우리 스스로가 지키고 보전해야 한다. 올해 식목일(청명·한식)에는 불 사용을 금지한 조상의 지혜를 되새겨 단 1건의 산불도 발생치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이경일 동부지방산림청장
[기고-이경일] 산불로부터 푸른 산 지키자
입력 2016-04-01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