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프트웨어 시장 들여다보니… 일할 곳 없나요? 일할 분 없나요? SW 인력 ‘풍요 속 빈곤’

입력 2016-04-01 21:23 수정 2016-04-01 21:28

중소 시스템 통합(SI) 업체를 경영 중인 A씨(38)는 요즘 거래처보다 헤드헌터 업체에서 더 자주 전화를 받는다. 헤드헌터들은 A씨에게 소프트웨어(SW) 개발자들의 이력서를 받아달라고 애원한다. A씨의 회사가 금융권 프로젝트에 참여해 인력이 부족한 상태인걸 알기 때문이다. A대표는 “많은 SW 개발자들이 취업할 회사가 없다며 헤드헌터 업체에 이력서를 내고 있다더라”면서 “그런데 막상 이력서를 보니 뽑을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게임 개발 업체에 다니던 B씨(35)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무직자가 됐다. B씨는 “여기저기 이력서는 내고 있는데 최근 경기가 안 좋다보니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있다”면서 “비슷한 실력의 개발자들이 인력 시장에 차고 넘치니 취업이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국책 대학인 한국폴리텍대학에서 SW 기술자 양성과정까지 들으면서 쌓은 스펙도 무용지물이었다.

B씨처럼 SW 개발자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엔 자신을 채용해 달라는 개발자들의 이력서가 넘쳐난다. 정작 ICT 업체들은 A씨처럼 일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김대중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으로 정보기술(IT) 강국의 기반을 닦았다. 온라인 쇼핑몰, 게임, 포털산업을 집중 지원하면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대학은 개발자를 양성하기 위해 앞다퉈 학과를 개설했고 사설 학원도 생겼다.

지금도 대학교의 SW 관련 학과에는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정부도 이슈가 있을 때마다 SW 개발 인력을 키우겠다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최고를 경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SW 개발은 젊은이들에게 열린 문이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ICT 전문융합인력 실태분석 및 전망 조사’에서 2018년까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5대 융합 분야의 인력 수요가 3만5000명 증가할 것으로 봤다.

문제는 전문화된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개발원 박동 박사가 지난해 발표한 ‘유망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인력 연구’ 보고서를 보면 전체 SW산업의 석·박사급 고급 인력(학사 출신, 4년 이상 경력자 포함)이 내년까지 22만명 필요한데 확보된 인원은 14만명에 불과하다.

반대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개발자들은 많다. 불황으로 ICT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미루면서 경험을 쌓을 기회까지 잃고 있다. B씨는 “전문 분야 없이 이 회사, 저 회사 다니다 보니 실력도 제자리인 것 같다”며 “정부 지원으로 받은 SW 개발자 교육도 무용지물”이라고 한탄했다.

전문가들은 고급 SW 개발자를 육성하려면 정부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개발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봤자 소용없다’며 대학원 진학을 기피하는 학생들의 인식을 바꿔줄 만한 산업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숙명여대 문형남 정책산업대학원 주임교수는 “SW 개발자에 대한 기업의 처우는 열악하고 취업도 어려운데 누가 대학원까지 가겠느냐”며 “교육 프로그램은 이미 대학원에 있으니 정부가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하고 졸업 후엔 취업할 수 있도록 산학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력 양성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 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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