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 SI(시스템 통합업무) 개발자 A씨가 만성적 과로로 시달리다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회사에서 해고됐다. 노동위원회가 A씨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리면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아냈지만, A씨는 끝내 복직되지 않았다.
지난한 법정 분쟁이 이어졌다. A씨는 자신이 4525시간에 달하는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민사소송을 냈고, 2013년 1심에서 일부승소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올해 1월에야 A씨는 서울행정법원에서 자신의 폐질환이 과로로 인해 발생한 산업재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
A씨 사례는 정부가 정보기술(IT)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며 매달리고 있는 정책의 허점을 드러냈다.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였던 IT 업종 근로자의 이중적 근로 실태가 적나라하게 고발된 셈이다. 민주노총 산하 IT 노조는 A씨 소송 지원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 장하나 의원 등이 나서서 관련 관행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A씨가 회사와 법정 분쟁을 이어가는 6년 동안 IT 업종 근로자들의 근로 실태는 과연 나아졌을까.
IT 노조에 따르면 일단 답은 ‘아니요’에 가깝다. IT 노조가 가장 최근 조사한 근로 실태 조사(2013년)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57.3시간이었다. 법정 근로시간 상한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주당 근로시간이 60시간을 넘는 응답자 비율도 34.9%에 달했다.
A씨 사례가 발생하기 훨씬 전인 2004년의 57.79시간과 비교해도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 지급이 명확지 않은 문제도 여전하다. 2013년 응답자의 75.5%가 “회사가 초과근로시간을 집계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실제 초과시간과 관계없이 일정시간으로 처리한다”는 응답도 13.7%였다.
가장 큰 원인은 SI 등의 업무가 대부분 하도급 형태로 이뤄지다보니 고용계약과 근로조건 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발의됐던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 등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19대 국회와 함께 사라질 운명이다.
IT산업 노동자의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도 찾기 힘든 실정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SI 업무 등 전산 분야에 장시간 근로가 만연해 있다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고용 통계상 분류가 명확하지 않아 숫자로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올해 정보통신업 등 장시간 근로가 의심되는 사업장 500곳을 집중 감독할 방침이다.
세종=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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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01 17:55 수정 2016-04-01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