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돈 땅에 묻었더니 썩고 냄새 나더라”

입력 2016-04-01 04:42

“과거에는 (돈을) 땅에도 묻어봤는데 썩고 냄새가 나더라. 그래서 지금은 사람을 시켜 다른 곳에 보관하는데 어딘지는 말하지 않겠다.”

구속 상태에서 ‘누군가’를 시켜 현금 14억원을 경찰에 제출한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 신모(43)씨가 담당 수사관에게 한 말이다. 그는 2조원대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수백억원을 챙긴 혐의(도박장 개장 등)로 조직원 15명과 함께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신씨에게 범죄수익 은닉자금의 행방을 추궁하자 처음에는 ‘돈이 없다’고 버티다가 결국 스스로 내놨다”고 31일 밝혔다.

경찰이 신씨와 그의 일당으로부터 압수한 범죄 수익은 39억7000만원 상당이다. 이 중 현금은 33억5000만원이다. 현금 중 신씨가 내놓은 14억원을 제외한 19억5000만원 중 다른 14억원은 계약 만료로 반환된 서울 강남의 고급빌라 전세보증금을 확보한 것이다. 나머지 5억5000만원은 신씨와 간부급 조직원의 거주지에서 5만원 다발로 발견됐다.

신씨가 현금 14억원을 경찰에 제출한 방식은 비상식적이었다.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그는 전화통화를 허락받은 뒤 누군가를 시켜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 공원의 인적이 드문 곳에 돈을 갖다 두게 한 뒤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려줬다. 신씨는 압수당했던 자신의 대포폰을 잠시 돌려받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현장에 갔을 때 라면 상자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종이상자 2개에 5만원 지폐가 가득 담긴 채 놓여 있었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관계자는 “이런 경우는 우리도 처음”이라고 했다.

14억원에 대해 신씨는 “국내에서 갖고 있는 전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어디에 보관했던 돈인지, 누가 가져왔는지 등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했다. 경찰은 중간 간부급 이상 조직원을 대부분 검거하고 이들의 거주지 등 거점 10곳을 압수수색해 확보 가능한 현금과 물품을 모두 회수했다. 때문에 신씨가 대체 어디서 14억원이나 되는 현찰을 조달했는지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14억원의 출처를 확인하기 전까지 “더 이상 국내에 숨겨둔 돈은 없다”는 신씨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는 2013년 초부터 지난해 12월 24일까지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자기 몫으로만 최소 300억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이들 일당의 범죄수익금 중 환수 대상으로 특정한 금액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93억5000만원이다. 이 중 이미 환수한 39억7000만원을 제외한 돈은 다른 부동산에 묶여 있는 26억8000만원, 해외에 현지 화폐와 카지노칩 형태로 보관 중인 27억원 등 53억8000만원이다. 결국 200여억원이 ‘행방불명’ 상태다.

경찰도 신씨가 돈을 모두 내놨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14억원의 출처에 대해 당장 강제 수사를 벌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임의 제출은 자발성이 전제되는 것인데, 범죄수익 환수라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서 말을 바꾸고 강제 수사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죄수익을 일부라도 환수하기 위해 출처를 불문에 붙이기로 약속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수사 관계자는 “그런 거래는 있을 수 없다”며 “범죄 수익을 최대한 환수하는 게 우리 목표인데 충분히 확보 가능한 돈을 눈감아줄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14억원의 출처와 추가 은닉자금은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찾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