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불안… 돈 있는 집도 지갑 닫는다

입력 2016-03-31 21:59 수정 2016-03-31 23:31

주부 박모(42)씨는 요즘 가계부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남편 월급은 그대로인데 은행에서 받은 주택담보대출로 매달 원금과 이자만 70만원이 빠져나간다. 생활비가 부족해 2000만원짜리 마이너스통장도 만들었다. 박씨는 31일 “마이너스통장 금리는 5.9%나 되는데 예금 이자는 1%대니까 박탈감이 든다”며 “그렇다고 미래를 대비해 저축을 안 할 수도 없어 정작 생활비로 쓸 돈이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꽉 졸라매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씀씀이를 줄이면서 가계 여윳돈이 100조원에 육박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지난해 자금순환(잠정치) 내역을 들여다보면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 금액이 99조2000억원으로 전년(93조5000억원)보다 5조7000억원 늘었다. 부채 상환 부담과 노후 불안 등이 겹치면서 가계가 소비 대신 저축을 늘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아직 여유가 있는 집들도 지갑을 닫고 있다.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가 더 위축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가계 전체로는 빚 부담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70% 선으로 올라섰고 부채 액수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5% 포인트 낮추겠다고 한 약속은 누더기가 됐다.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는 1422조7000억원으로 1년 전 1296조1000억원보다 9.7% 늘었다. 이를 순처분가능소득(837조2000억원)으로 나눈 비율은 169.9%에 달한다. 2008년(143.3%)과 비교하면 7년 만에 26.6% 포인트 상승했다. 소득은 찔끔 늘어나는데 가계빚은 빛의 속도로 커진다는 의미다. 빚 상환 부담 때문에 쓸 돈은 갈수록 주는 셈이다. 지난해만 봐도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5.2%였지만 부채 증가율이 9.8%로 배에 가까웠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한국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자금순환 기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30.5%)보다 높아 향후 급격한 금리 상승 등의 충격이 오면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부실 가구가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계대출(신용카드 대출 포함)만 뽑아 작성되는 가계신용(1207조원) 기준 소득 대비 부채 비율도 지난해 말 기준 144.1%로 OECD 평균치를 웃돈다. 자금순환표 기준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넓은 의미의 가계 개념을 활용해 소규모 개인사업자와 비영리단체를 포함하지만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나라별 비교 차원에서 활용되는 지표다.

LG경제연구원 강중구 수석연구위원은 “그동안 빚을 늘려 소비가 증가해 왔는데 이제는 부채를 더 늘리기가 부담스러워졌다”며 “이미 소비 부진은 시작됐고, 늘어난 부채가 다른 충격과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소비 부진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