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지도에 없는 길이라더니 투자는 않고 배당만 늘렸다… 효과 없는 ‘가계소득 증대 세제’

입력 2016-04-01 04:03



삼성전자 등 4대 그룹의 대표 계열사 중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오른 곳은 LG전자 한 곳뿐이다. 나머지 3개 기업의 직원 평균 임금은 1년 전보다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기업들이 이러니 대부분 가계의 주름살은 깊어졌을 것이다. 실제 지난해 전체 가구의 실질소득은 0.9% 늘어나는 데 그쳐 2009년 이후 가장 낮았다.

그러나 1년6개월 전 정부는 2015년을 가계소득 증가 원년의 해로 잡았다. 정부는 2014년 8월 세제 개편안에서 ‘가계소득 증대 세제 3종 세트’를 발표했다. 기업에 고여 있는 돈을 가계로 흘러가게 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의 새로운 시도였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를 두고 ‘지도에 없는 길’이라고 칭했다. 31일이 지난해 실적에 대한 기업들의 법인세 신고 마감일이었던 만큼 지도에 없던 길의 첫 성적표는 곧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 세제 3종 세트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성적은 신통치 않다.

◇기대는 컸는데=가계소득 증대 세제는 기업에 고여 있는 여유자금을 가계로 흘러들어가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임금을 올리고 배당에 적극적인 기업에는 세제상 인센티브(근로·배당소득증대세제)를 주고 투자와 임금 인상, 배당에 인색한 기업에는 징벌적 과세(기업소득환류세제)를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1997년 IMF사태 이후 이어지고 있는 ‘부자 기업, 가난한 가계 현상’의 고착화를 막기 위한 참신한 시도였다. 당시 주형환 기재부 1차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법인세를 3% 인하했는데 기업들이 기대한 만큼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세제 3종 세트를 통해 기업소득이 가계와 사회로 흘러들어가는 선순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현실은 암담=정부 기대대로라면 지난해 가계소득과 기업 투자는 늘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통계청 가계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월 평균 실질소득은 265만690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0.92% 늘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2.6%)의 3분의 1 정도 수준이다. 적은 경제 성장의 과실이 국민보다는 기업과 정부에 더 돌아간 셈이다. 기업 투자도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설비투자 증가율은 5.3%로 2014년(6.0%)보다 줄었다. 정부가 지난해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경제성장률 3% 달성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도 기업들이 돈을 쌓아놓기만 하고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과 투자를 주저한 기업들이 기업소득환류세를 피하기 위해 택한 것은 배당 확대였다. 기업소득환류세제는 기업이 당기순이익의 80% 이상을 투자나 배당, 임금 인상에 사용하지 않으면 미달 금액의 10%를 법인세로 추가 징수하도록 돼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실적 기준으로 상장된 기업이 주주에게 배당한 총액은 18조398억원으로 2014년보다 3조9231억원이나 많았다. 배당을 많이 하면 기업소득환류세를 피할 수 있는 데다 배당소득증대세제를 통해 세금도 깎을 수 있으니 기업으로선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러나 배당소득의 대부분은 근로자가 아닌 외국인과 대주주에게 돌아간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8조4000억원에 달하는 배당소득을 단 10만여명이 나눠 갖고 있다.

◇대안은 너무 늦고=기재부는 기업들이 배당에만 열을 올리는 폐해를 막기 위한 개선 방안을 준비 중이다. 올해 8월 세제개편안을 통해 투자, 임금 인상분에 대한 가중치를 늘려 기업 이익의 배당 쏠림 현상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올해 고친다 해도 소급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개선 방안은 2017년부터 적용된다. 가계소득증대세제가 2015∼2017년 3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마지막 해가 돼야 문제점이 보완되는 셈이다. 또 현대차 한전부지 매입을 투자로 쳐주는 현행 방식이 유지되는 한 기업들이 실제 투자보다는 부동산 등 안전자산에만 투자하는 관행이 이어질 소지가 크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학과 교수는 “월급은 한 번 올려주면 내리기 힘들고 투자는 리스크를 감안해야 한다”며 “결국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배당을 늘릴 것은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었는데 정부만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윤성민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