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김은혜] 생명의 꽃으로 피어나는 십자가 사랑

입력 2016-03-31 18:54

지난 한 주 부활의 기쁨을 전하셨나요. 부활의 참 생명을 누리고 계신가요.

부활과 십자가는 생명으로 인도하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인이 일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신앙의 상징입니다. 부활은,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지금도 살아있음으로써 죽음이 끝과 실패가 아니며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온 인류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의 생명은 근원적이고 영원한 생명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 없는 고난과, 생명으로 향하지 않은 희생을 십자가의 길로 오해합니다.

가정해체로 갈 곳 잃은 청소년들과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 모이는 작은 교회를 담임목사로 섬긴 적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청소년들과, 가족들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자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예배는 깊은 고뇌의 자리가 됐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순간이 연속됐습니다. 가장 어려운 설교는 십자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사순절 기간,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에 대해 설교한 후였습니다. 한 어머니가 찾아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목사님, 집에서 나와 있다 보니 남편이 딸을 때린다고 하네요. 저만 맞으면 되는데…. 제가 그 십자가를 지지 않아 딸이 맞고 있어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딸을 집에 두고 쉼터로 왔던 어머니는 그렇게 자책하며 숨죽여 울었습니다. 전 그분의 고통 앞에 무릎 꿇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제가 설교를 잘못했네요. 십자가의 길은 생명의 길이예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려고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지, 폭력을 수용하라고 지신 것이 아니에요. 따님을 보호할 길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종에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 땅의 폭력과 불의로 인해 고통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희생자들에게 어떻게 십자가의 사랑과 생명을 전해야하는지를. 십자가는 폭력의 자리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비우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가 생명과 맞닿아 있지 않으면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학대를 구분하지 못하고,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과 불의한 일을 혼동할 때 기독교는 권력의 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은 폭력에 의한 희생과 불의를 용인하는 길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타협과 절망으로 향하는 길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죽음도 막지 못하는 생명으로 향한 거룩한 고난입니다. 희망으로 향하는 자발적 고난입니다. 때로는 기쁨으로 걸어가는 생명의 길입니다.

폭력에 유린당한 피해자들의 삶을 십자가 고난에 비유하며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불의와 폭력의 희생자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에 참여하며 함께 눈물 흘려야 합니다.

십자가는 온 인류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오늘 여기에서의 풍성한 삶을 선물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총의 사건입니다. 늘 울어도 다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의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빛나는 생명으로, 부활의 기쁨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사순절은 지나갔지만 고난에 참여하는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죽음을 넘어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생명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십자가의 그 사랑을 온 누리에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은혜 교수 (장신대·기독교와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