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이 건너가 세운 나라지만 정말 그랬나 싶을 만큼 미국과 영국의 문화는 다르다. 정부 형태(대통령제 대 의원내각제)부터 좋아하는 스포츠(야구 대 축구)까지 그들의 다름을 꼽다보면 ‘교차로’에 이른다. 미국 도로는 ‘신호등교차로’가 뒤덮은 반면 영국은 신호등 없는 회전교차로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에서 운전하며 ‘라운드어바웃(회전교차로)’을 만날 확률은 미국의 10배쯤 된다.
우리에게 ‘로터리’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라운드어바웃은 저 그림처럼 생겼다. 중앙의 원형교통섬을 빙 도는 회전도로는 일방통행이다. 직선도로 ①에서 ②로 좌회전하려면 회전도로에 진입한 뒤 4분의 3바퀴를 돌아 빠져나간다. 우회전·직진도 마찬가지고, 만약 진출로를 놓쳤다면 한 번 더 돌면 된다.
복잡해 보여도 이 시스템을 지탱하는 룰은 딱 하나. 회전 중인 차에 우선권이 있다. 회전도로에 진입할 때 이미 회전하고 있는 차에 지장을 줘선 안 된다. 내가 진입해서 회전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게 될 상황이라면 멈추고 기다려야 한다. 회전도로에 들어선 뒤에는 각 직선도로에서 어떤 차가 달려오든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 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인데, 이런 교차로를 처음 구상한 것은 미국인이었다. 1903년 윌리엄 펠프스 에노가 일방통행 로터리를 제안해 뉴욕의 콜럼버스 서클이 생겼다. 이를 받아들여 프랑스가 1907년 파리 개선문 주변에 적용했고, 영국이 1926년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를 만들었다. 100년이 흐른 지금, 프랑스와 영국은 회전교차로 비중이 선진국 최상위권이고 미국은 최하위권이다.
이런 사실이 자랑스러웠는지 영국인들은 ‘라운드어바웃을 사랑하는 사람들(RAS)’이란 단체까지 만들었다. 웹사이트에 이렇게 적어 놨다. “우리에게 언제 가라 언제 서라 지시하는 파시스트적이고 로보틱한 신호등과 달리 라운드어바웃은 ‘우아한 단순함’으로 우리가 스스로 판단해 서로에게 매너를 보이도록 한다. 도로는 땅에 생긴 상처이며 라운드어바웃은 그 아스팔트의 오아시스다.”
이런 자부심이 부러웠는지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라운드어바웃 싫어하는 미국인, 생각 바꿔야’란 기사를 실었다. 회전교차로로 바꾸면 교통사고가 35%, 사망사고는 90% 줄어든다는 분석을 소개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①일방통행을 하기에 정면충돌 가능성이 제거된다. ②구조상 교차로에 접근하는 차들이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 ③신호등이 없어 차량 흐름이 좀 느려도 끊이지 않는다.
양국 ‘교차로 문화’의 차이를 놓고 전문가들은 인프라에서 원인을 찾거나, 이해 충돌에 대처하는 영국의 타협 문화와 미국의 대결 문화를 거론했다. “미국이 라운드어바웃 보급에 뒤졌다고 너무 자책할 건 없다. 일본은 진짜 몇 개 안 된다”며 위로의 말을 꺼낸 이도 있었다.
두 교차로에는 다른 철학이 담겨 있다. 신호등 앞의 운전자는 색이 언제 바뀌나 신호만 바라보게 되지만, 라운드어바웃에선 다른 운전자들을 살펴야 교차로를 지날 수 있다. 신호등교차로의 지휘자는 신호등을 설치해 관리하는 사람이고, 회전교차로는 ‘내가 양보할 상황’이란 각자의 판단과 ‘저 차가 양보할 것’이란 믿음에 의해 운영된다.
우리나라도 신촌로터리를 비롯해 회전교차로가 꽤 있었다. 소통에 방해된다고 신호등으로 바꿨다가 사고를 줄여야 한다며 요즘 다시 늘려가고 있다. 전국에 443곳이 있는데, 국민안전처는 2022년까지 1592곳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교차로가 바뀐다고 문화가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운전하다 마주치면 한 번쯤 그 작동원리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사회도 그렇게 돌아가야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태원준 칼럼] 신호등과 라운드어바웃
입력 2016-03-31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