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숙종 16년(1690) 양반 유정기는 아내 신태영을 시부모에게 불효했다는 이유로 쫓아냈다. 14년이 흐른 후 유정기는 이혼을 공식 요청하지만 예조는 법조문이 없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둘의 이혼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신태영은 유정기가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했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9년간의 이혼 소송을 통해 조선 가부장제의 이면을 들춰냈다.
조선은 엄격한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였다. 남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으며,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부부 사이의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유정기는 신태영이 시부모에게 욕하고 제주(祭酒)에 오물을 섞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태영은 “이혼의 원인이 유정기가 비첩, 즉 계집종 예일에게 빠졌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사대부 남성이 지배한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가부장제 권력의 중심인 남편에게 저항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더욱 듣기 어렵다. 신태영의 육성을 통해 가부장제에 저항한 조선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책은 9년간 이어진 이혼 소송 사건으로 조선 사회 전체를 꿰뚫어 보는 미시사 읽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손에 잡히는 책-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 조선 양반가 아내가 9년간 벌인 이혼소송
입력 2016-03-31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