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만큼 기독인들에게 친숙한 조형물이 또 있을까. 십자가를 마주할 때면 우리는 그 위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고자 피 흘리며 죽어간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린다. 특히 지난주 부활절을 보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고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십자가는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책은 알리스터 맥그래스 옥스퍼드대 석좌교수가 1990년 10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쓴 것이다. 맥그래스 교수는 “모든 신학 교과서가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서술하면서 ‘속죄론’이란 어설픈 어구로 표현하는데 이 말이 완전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도발하며 두 가지 이유를 든다.
먼저 ‘속죄’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그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론’이라는 말이 마치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정확히 어떻게 우리를 구속하시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십자가의 의미를 ‘속죄론’으로 풀어내는 대신 이미지를 통해 설명한다. 전쟁터, 법정, 재활치료소, 감옥, 병원이라는 이미지에서 승리, 구속, 용서, 해방, 치유의 의미를 끄집어낸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죄를 이겨낸 것을 나치의 지배에서 해방된 점령국에 빗대 전쟁터의 이미지 속에서 ‘승리’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십자가가 ‘죽음과 고통의 세상 한 가운데 있는 희망의 상징’, 즉 ‘실재하는 세상에 실재하는 희망’이라는 결론을 내놓는다.
고루하고 재미없게 여겨지는 신학을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내는 맥그래스 교수의 실력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마치 맥그래스 교수가 로마시대 십자가 앞에 서 있는 독자의 손을 잡아 이끌며 이미지를 통해 하나하나 그 의미를 설명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크리스천도 잘 모르는 십자가 의미 쉽게 풀어
입력 2016-03-31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