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조선과 일본에 살다] 노시인이 증언한다… 4·3, 그 쓰라린 역사

입력 2016-03-31 19:22 수정 2016-03-31 20:56
김시종 시인(오른쪽)이 지난 1월 일본 오사카 스루하시에서 자신의 자서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를 한국어로 번역한 윤여일씨를 만났다. 스루하시는 67년 전 제주에서 도망 나온 김 시인이 처음 향한 곳이기도 하다. 오세종 류큐대 교수 제공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의 자서전이 나왔다.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자랐고 20세에 일본으로 밀항한 뒤 지금까지 '재일 문인'으로 살고 있다. 몇 권의 시집과 평론집을 발표했으며, 마이니치출판문화상, 오구마 히데오 상, 다카미 준 상 등 일본의 굵직한 문학상을 받았다.

김시종의 생애를 들여다보노라면 지금 맞이하는 4월의 공기와 색깔이 일순 돌변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흔에 근접한 그의 생애를 지배해온 것은 4·3, 1948년 제주도에서 시작된 그 끔찍했던 학살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시종의 자서전은 4·3에 대한 기억과 증언이 되고 만다. 김시종은 10대 시절 참여했던 4·3 사건을 중심에 두텁게 놓고, 그 앞뒤에 살아온 얘기를 소략하게 덧붙이는 구성으로 자기의 인생을 회고했다.

“토해낼 곳이 없는 도민의 분노가 기화된 가솔린처럼 공중에 가득 차 언제 발화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태로, 제주도의 봄은 진달래가 산을 물들이는 4월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책은 8·15 해방부터 4·3까지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한글 공부도 거부할 정도로 ‘황국소년’이었던 김시종이 해방을 맞고 그 이후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어떻게 4·3에 가담하게 됐는지 얘기한다. 그것은 제주도민들이 왜 4·3으로 떠밀려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힘겹게 얻은 ‘해방’임에도 불구하고, 추궁받던 친일파와 우익 유지들이 불과 3개월 만에 복권해 활개를 치고 해방군이어야 할 미군마저 점령정책의 군정을 펼치며 이 패거리들의 뒤를 봐주는 상황”이었다. 또 남북분단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었다. 이 같은 시대 전개에 반대하는 비판세력들은 모두 북조선에 동조하는 ‘빨갱이’로 몰렸다. 우익 단체들의 백색테러도 횡행했지만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이를 처벌하기는커녕 공공연히 정당화했다.

“일본이 패하고 떠나도 식민치하에서 국물을 핥던 무리들이 멋대로 설친다는 게 참을 수 없어 나는 의분에 치를 떨었습니다.” 15세에 해방을 맞은 김시종은 18세에 남로당의 말단 당원이 된다. 그리고 연락책의 임무를 담당하면서 직접 경험한 4·3을 증언한다.

“5만여명에 달하는 ‘4·3 사건’의 희생자, 공식적으로는 3만명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낮춰잡아도 5만명보다 적지 않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실감입니다. 실제로 최근 수년 동안에만 4000명 가까운 4·3 관련 희생자가 새롭게 판명되었습니다. 어쨌든 이 정도로 보이지 않게 덮어둔 희생자가 미군정하에서 생겨났으니 이 사건은 그저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달리 말해 미군정청이 그럴 마음만 있었다면 희생자 대부분은 죽지 않아도 될 양민들이었습니다.”

김시종이 들려주는 8·15 해방부터 4·3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해방이란 대체 무엇이었나?’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그 숱한 비극과 오류를 다 묻어버리고, 제주도의 그 엄청난 아픔을 제외하고, 그저 ‘기쁨’이나 ‘감격’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갈 시간대가 아니다.

“본토의 검찰청에 송치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행방불명된 활동가가 나와 관계있는 사람만도 네 명입니다.” 김시종은 이 책에서 4·3 희생자에는 포함되지 않는, 어둠에 갇혀있는 무수한 주검들을 기록한다. 그의 기억은 나이를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세하다. 소설이나 영화 속의 4·3과는 또 다른 구체성과 실감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는 증언이나 기록을 넘어선다. 번역자 윤여일(제주대 SSK 전임연구원)씨가 후기에서 적절하게 거론한 것처럼 ‘대한민국이 김시종의 4·3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 여기서 ‘김시종의 4·3’은 ‘남로당의 4·3’을 말한다. 김시종은 남로당 연락책이었던 자신이 겉으로 드러나면 군사정권이 강변해온 공산폭동 운운을 괜히 뒷받침해 주민봉기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을 것을 우려해 그동안 침묵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노시인은 60년 넘게 억눌러온 얘기를 마침내 꺼내놓고 4·3이 남로당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지, 4·3의 학살이 남로당의 개입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대한민국은 아직도 남로당의 4·3 이야기는 배제할 것인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묻는다.

이 책은 지난해 말 일본에서 아사히신문이 제정한 문학상인 오사라기 지로 상을 받았다. 노년의 원숙함과 신중함으로 소년의 격정과 혼돈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