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왕국’ 관청 터 빛보다… 월성서 통일신라 건물지군 발견

입력 2016-03-30 21:06
경주문화재연구소가 30일 경주 월성 C지구 발굴 현장을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하고, 하나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총 14기의 건물이 배치됐던 터를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C지구에서 출토된 명문 기와와 막새(위), 토기들(아래)이다. 문화재청 제공
신라 천년의 왕성인 월성(경북 경주시 교동)에서 관청으로 보이는 건물 밀집 지역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3월부터 시행한 월성 정밀 발굴 조사결과, 하나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일곽의 통일신라 후기 건물지군이 확인됐다고 30일 밝혔다.

총면적 20만7000㎞에 달하는 월성은 편의상 서편부터 A∼D로 구분해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중앙의 C지구에서 일곽의 건물지군이 발견됐다. 이 건물지군은 동서 51m, 남북 50.7m에 2585㎡ 면적을 가진 정사각형 모양이며, 담장을 둘러친 일곽 안팎에 14기의 건물이 배치된 형태로 나타났다.

건물과 담장의 건축 시기는 인화문(도장무늬) 토기, 국화형 연화문 수막새 등이 다량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8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됐다. 또 흙으로 만든 ‘토제벼루’가 다량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건물지군의 용도는 문서를 작성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라는 게 연구소의 분석이다. 이 지역에서는 토제벼루가 50점 이상 발견됐는데, 월성 주변의 동궁과 월지, 분황사 등에서 출토된 양보다 월등히 많다.

C지구에서는 ‘의봉4년개토(儀鳳四年皆土)’ ‘습부(習部)’ ‘한지(漢只)’ ‘한(漢)’ ‘정도(井桃)’ ‘전인(典人)’ ‘본(本)’ ‘동궁(東宮)’이라고 새겨진 기와와 토기도 다수 출토됐다. ‘전인’은 궁궐 부속관청인 와기전(기와·그릇생산 담당)에 소속된 실무자, ‘본’은 신라 정치체제인 6부 중 하나인 본피부, ‘동궁’은 태자가 거처하는 궁궐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현재까지 확보된 유물 분석 자료에 의하면 월성은 주로 4세기에서 9세기까지 왕궁 또는 관련 시설이 들어섰으며, 신라 멸망 이후 근대 이전까지는 월성 내에 거의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14년 12월 개토제를 시작으로 3개월간 시굴한 뒤 지난해 3월 본격적인 발굴에 돌입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월성은 신라 제5대 파사왕 22년(101)에 축성을 시작했으며, 신라가 망한 935년까지 궁성으로 쓰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