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는 세상에… 짝을 지키는 흑두루미의 순애보 ‘뭉클’

입력 2016-03-30 19:42
전남 순천만 습지에서 30일 흑두루미 한 쌍이 시베리아로 북상하지 못한 채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오른쪽 흑두루미 다리 부분(점선)에 큰 혹이 매달려 있다. 순천만 강나루 제공

“뚜루…뚜루…, 뚜루…뚜루….”

30일 오전 11시 전남 순천만 습지 옆 농경지. 한 쌍의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 가운데 한 마리가 애절한 울부짖음으로 정적을 깨뜨렸다. 한참을 울부짖던 흑두루미는 짧은 도약 뒤에 날아올라 힘껏 날개짓을 해보지만 50여m를 날다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 다리에 지름 15㎝가량의 큰 혹이 매달려 있어 매우 고통스럽고 무거워 보였다. 월동을 마치고 마지막 무리가 지난 25일 시베리아로 북상한 뒤 유일하게 남은 부부 흑두루미다.

날지 못하는 자신의 짝을 지키는 이들 부부의 ‘순애보적 사랑’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갓 미물에 불과한 흑두루미 한 쌍의 애달픈 사랑이 최근 자식과 가족을 학대하고 숨지게 하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간사회에 잔잔한 교훈을 주는 듯하다.

한 조류학자는 “혹이 있는 흑두루미의 다리 부위는 조류상의 생물학 상으로는 발목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바이러스성 종양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경계가 심한 흑두루미 근처로 접근도 어려워 치료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은 “지난달 중순쯤 다리에 혹이 있는 흑두루미와 그 옆을 지키는 한 쌍이 처음 관찰됐다”면서 “그 당시보다 현재 흑두루미 다리 부위의 혹이 많이 커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희귀한 조류의 월동지이자 서식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순천만은 오염원이 적어 다양한 생물이 풍부하다. 흑두루미, 먹황새, 검은머리물떼새, 노랑부리저어새 등 220여종의 보호 조류가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순천=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