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교회 ‘희망 허브’로 거듭나다] 귀농·귀촌인 품는 ‘영성 인큐베이터’

입력 2016-03-30 18:37
충북 제천 희망나무숲 산촌유학센터 아이들이 마당에 있는 텃밭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문종복 속초시민교회 목사(왼쪽 세 번째)와 교인들이 직접 재배한 버섯을 들고 있는 모습. 희망나무숲 산촌유학센터·속초시민교회 제공

‘4067가구(2010년)→4만4586가구(2014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발표한 귀농·귀촌 가구 수다. 4년 만에 1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런 추세라면 2033년엔 귀농·귀촌 인구가 950만명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100세 시대 노후대비가 불안한 30∼40대와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20대 등 젊은 층의 귀농·귀촌이 늘고 있다. 현재 농촌교회가 당면한 고령화 위기에 대한 해법을 이들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시 아이들에게 손짓하는 교회=박시우(11)군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닭장으로 달려간다. 암탉들이 낳은 알을 챙기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시우는 지난해 8월 충북 제천 희망나무숲 산촌유학센터(희망센터)에 왔다.

문순국 제천 도화교회 목사가 2012년 세운 희망센터는 도시아이들이 6개월 이상 머물면서 농촌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난 28일 찾은 희망센터 건물 뒤쪽엔 구악산이 솟아있었다. 아이들은 이 산에서 고사리 두릅 취나물 등을 캔다. 여름엔 마당 앞에 흐르는 계곡으로 족대(대나무와 그물로 만든 어구)와 통발을 들고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 별이 밝게 뜨는 밤이면 아이들은 망원경을 들고 마당에 나와 별을 본다.

마당 가장자리엔 텃밭이 있다. 아이들은 지난해 이곳에서 고구마 토마토 감자 옥수수 상추 당근 등을 키웠다. 수확한 과일채소는 아이들 식탁에 오른다. 이렇게 살다보니 지세준(8)군은 2년 전 온몸을 덮었던 아토피 피부염이 거의 다 나았다. 휴대폰은 일주일에 딱 2시간만 사용할 수 있지만 불편해하지 않는다. 희망센터 아이들은 도시아이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문 목사가 희망센터를 세운 이유는 도시가정의 귀농·귀촌을 돕기 위해서다. 이들이 ‘도시탈출’을 하려면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인 자녀교육에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직 농촌생활을 경험한 도시아이들은 6명뿐이고 가족 전체가 옮겨온 가정도 없지만 문 목사는 여전히 희망센터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문 목사는 “각박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정서적 안정을 찾기 위해 아이들을 산촌에 보내는 가정이 늘고 있다”며 “이렇게 도시와 농촌 간 교류가 늘면 농촌으로 옮겨오는 도시가정도 증가하고 농촌교회도 더 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가 운영하는 희망센터는 도시아이들에게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희망센터 아이들은 자기 전에 문 목사와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한 뒤 그날의 삶을 나눈다. 문 목사는 “6명 중 5명은 하나님을 모른 채 이곳에 왔다가 예수님을 믿게 돼 이곳이 고향교회가 됐다”며 “여기서 접한 복음이 그들에게 좋은 신앙의 뿌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 농부에게 손 내미는 교회=문종복 목사는 2000년 강원도 속초에 속초시민교회를 세우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버섯농장을 함께 만들었다. 귀촌가정이 이곳에 정착하려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전국 각지에서 20여년간 농촌사역을 하다 이곳에 자리 잡은 문 목사는 이때부터 이미 도시가정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농촌목회에 대해 고심했지만 방법은 귀농정책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젊은이들이 떠나기만 하는 농촌에는 미래가 없다. 떠나는 농촌이 아니라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21가정이 문 목사가 세운 고성믿음표고버섯 영농조합법인에서 일한다. 모두 도시에서 생활하다 옮겨온 가정이다. 이 중 30∼40대 가정이 절반 정도 된다. 처음엔 농장 일을 어려워한 가정도 있었지만 대학과 대학원에서 축산학과 농업자원개발학을 전공한 문 목사가 기술을 가르치며 적응을 도왔다. 문 목사는 “요즘엔 고향에 내려가서 귀농하려는 도시가정들이 많다”며 “그들이 고향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농촌교회가 기술을 가르치고 지원하는 데 적극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천=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