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의 한국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한 고양 오리온에는 수훈선수가 많다. 현란한 드리블과 빠른 돌파, 킬패스 행진을 벌인 조 잭슨, 애런 헤인즈 등등….
하지만 이번 우승의 최대 공신은 바로 이승현(24)이다. 많은 득점을 해서가 아니라 상대팀 전주 KCC의 국내 최장신 센터 하승진(221㎝)을 꽁꽁 묶었기 때문이다. 가히 골리앗을 잡은 다윗처럼, 이승현은 30㎝ 가까이 작은 키(197㎝)로 하승진의 가공할 포스트 플레이를 ‘셧 다운’시켰다.
이승현은 2014 대학농구리그에서 고려대의 2연패를 이루며 대학무대를 평정한 파워포워드였다. 특기는 골대 주변의 2점슛이었다. 그런데 그해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오리온 유니폼을 입은 뒤에는 3점슈터로 변신했다. 2m대 포워드와 센터가 즐비한 프로리그에서 197㎝ 신장으로는 ‘빅맨’역할을 잘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주변 평가를 듣자, 스스로 먼거리 슛을 갈고 닦은 것이다. 물론 포스트업 공격과 골밑 플레이도 버리지 않았다.
데뷔 첫 해 그는 경기당 평균 1.3개의 3점슛을 터트렸다. 성공률이 42.9%로 웬만한 슈터들보다 나은 수준이었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3점슈터라 하기엔 부족했다.
그런데 올 시즌 이승현은 오리온 군단의 키플레이어로 우뚝 섰다. 갈고 닦은 3점슛 능력에 잭슨과의 2대2 플레이, 속공 등 공격의 모든 통로에 기여했고, 수비에선 거침없는 몸싸움으로 상대팀 선수들을 제압했다.
이런 이승현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지게 발휘된 게 바로 KCC와의 챔피언 결정전이었다. 그는 이번 시리즈에서 공격보다 수비에 자신의 온 몸과 투혼을 불살랐다. 바로 하승진 봉쇄작전이었다. 하승진은 안양 KG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경기당 평균 두 자릿수 득점과 리바운드(15.75점 14.8리바운드)를 올렸다. 당연히 챔피언전에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하승진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이승현이 그의 앞에 버티고 서서 철저하게 박스아웃을 했고,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록을 보면 이승현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하승진을 압도했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하승진의 챔피언전 게임당 기록은 득점 8.67점, 리바운드 8.7개가 전부다. 4강전에 비해 득점과 리바운드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수비에 온 힘을 다하던 이승현은 공격기회에서도 빛을 발휘했다. 챔피언전 6경기 동안 3점슛 10개를 터뜨리며 KCC의 외곽을 초토화시켰다. 상대 마크맨인 하승진은 골밑이 아니라 외곽으로 돌아 나오는 이승현을 막느라 다른 오리온 선수들의 돌파를 번번이 방치했다. 30일 챔프전 6차전에서도 이승현은 하승진 수비와 더불어 14점 7리바운드를 기록해 14년 만의 오리온 우승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이승현은 파워포워드로는 키가 다소 작지만, 마치 왕년의 현주엽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당당한 근육질 체형이다. 거기다 파워포워드로서는 발군의 외곽슛 능력까지 겸비했으며, 수비에서마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한마디로 전천후 선수다.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이승현에 대해 묻자 먼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리곤 “없어선 안 될 선수”라고 했다. 데뷔 2시즌 만에 챔프전 MVP 타이틀을 손에 거머쥔 이승현은 “경기에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부모님의 결혼기념일도 몰랐다. 축하드린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골리앗도 꼼짝마… ‘KBL 두목’ 이승현, 오리온 14년 만에 우승 견인
입력 2016-03-31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