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존영이라고?

입력 2016-03-30 17:42

1987년 대선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보통 사람’을 브랜드로 내세웠다. 유신 시대와 신유신과 신군부의 독재를 겪은 국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뒤 권위주의를 지긋지긋해했다. 그런 시대 흐름을 타고 노 후보는 어느 날 “보통 사람 믿어주세요” 하면서 조그만 서류 가방도 직접 들고 다녔다. ‘군인 출신이 또 대통령을…’ 같은 비판을 무뎌지게 하기 위해 무엇보다 탈권위적 선거 전략을 짠 것이다. 이 전략은 노무현 전 대통령 말대로 선거에서 ‘재미 좀 봤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당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던 DJ DOC의 ‘DOC와 함께 춤을’을 로고송으로 택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율동도 했고, TV 프로그램에 나가 망가지는 모습도 보여줬다.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젊은이들의 시선을 붙잡으려 무던 애를 썼다. 상대 진영에서 나이와 건강을 집요하게 쟁점화시켰기 때문이다.

선거판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권위주의, 근엄, 고리타분, 낡은 이미지 같은 것들이다. 요즘 말로 꼰대 같은 분위기로는 외면 받기 십상이다. 각하, 영식, 영애 같은 표현도 그래서 공식적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느닷없이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박근혜 대통령 존영(尊影) 논란이 일고 있다. 대구시당은 탈당한 4명에게 공문을 보내 ‘대통령 존영을 반납하라’고 요구했다. 지금 시대에 ‘존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참 용감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쓰지 않는 단어를 과감히 선택했으니 말이다. 사진이라는 단어는 불경스러웠던 모양이다.

청와대는 이 소동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탈권위주의적 ‘보통 사람’을 기획했던 87년 노태우 선거 캠프의 핵심 중 핵심이 지금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니 그럴 만하겠다. 시당이면 지역 선거를 책임지는 곳이다. 대구 유권자들을 그 수준으로 보니 알맞은 수준의 단어를 선택했을 게다. 바깥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면서 제 주장만 해대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생각난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