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 도산위기, 창고물량 긴급처분’.
지난 28일 서울 성북구의 한 의류매장 앞. 검은색 현수막에 크고 굵게 쓰인 노란색 글씨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개성공단 제품을 파는 것이란 내용이었다. 매장에 들어서니 등산복, 패딩, 운동화가 종류별로 펼쳐져 있었다. 등산복, 조끼 등은 1만∼2만원, 패딩은 7만원 수준으로 대부분 저가 물품이었다.
하지만 개성공단 제품에 있어야 할 ‘메이드 인 개성’이나 ‘메이드 인 코리아’ 표시는 없었다. 책임자는 “매장 제품은 모두 개성공단 협력업체 물건”이라고 주장했지만 계속 물어보자 “협력업체의 다른 국내 공장에서도 오는 것 같다”고 한 발 물러났다. 물건의 출처를 재차 묻자 그는 마침내 실토했다. “옷이 하도 안 팔리다보니 이렇게라도 개성공단 제품인 것처럼 장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0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의 한 매장도 마찬가지였다. 현수막에 ‘개성공단 생산공장 과잉생산 긴급처분’이라고 쓰인 매장에 들어가 보니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과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섞여 있었다. 업체 관계자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게 다 개성산이냐’고 묻자 “개성산도 있고 국내 공장산도 있다”는 답변이 나왔다.
북한 핵실험에 따른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이후 도산 위기에 처한 개성공단 기업 물건으로 속이고 땡처리 형식으로 파는 ‘읍소 마케팅’이 부쩍 늘고 있다. 서울 도심이나 수도권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던 이런 마케팅은 최근 전국 곳곳에서 성행하고 있다. 개성공단 업체에 대한 국민의 동정심을 이용해 불황을 타개하려는 속셈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최근 경남 진주에서 개성공단 제품을 사칭한 의류매장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협회 관계자는 “생산 업체가 개성공단 입주기업이나 협력업체라 하더라도 제품 생산지가 개성이 아니라면 문제가 된다”며 “최근에도 전국 각지에서 2∼3건의 제보가 들어와 매장 사업자에게 경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성공단을 사칭한 마케팅은 처벌하기가 애매하다. 경찰 관계자는 “소비자가 고소하지 않는 한 해당되는 처벌 조항이 없다”며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케팅 때문에 사기라고 판단해 현장조사에 착수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도 “허위·과장광고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땡처리 매장의 경우 생계형이어서 과도한 처분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입주기업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2013년에 개성공단이 6개월여간 잠정 중단됐을 때도 이런 마케팅이 있어 알아보니 거의 중국산 제품이었다”며 “개성공단 업체를 도산위기, 폐업 수순이라고 못 박으며 땡처리를 하다보니 개성공단 기업 이미지만 나빠지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개성공단 생산 제품을 판매하는 개성공단상회 관계자는 “실제 개성공단 제품인지 일일이 모니터링하고 고소해야 하지만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개성공단 제품 땡처리?… 사기 마케팅 조심
입력 2016-03-3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