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판사는 그 직업 자체도 번듯하지만 퇴임 후 거액을 번다는 이유로도 선망의 대상이다. 전관 변호사 수입은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다. 과거 7개월에 7억원의 보수를 받아 감사원장 문턱에서 낙마한 정동기 전 대검차장은 무척 억울해했다. 당시 법조계에선 그의 보수를 두고 “자기관리를 잘한 케이스”라는 평가였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5개월에 16억원을 받았다가 총리 후보에서 미끄러졌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대법관이 퇴임 후 로펌에 가면 1년에 100억원 정도 벌 수 있다고 하더라”고 천기누설을 했었다.
실제 1년에 순수익으로 50억원을 벌었다는 부장검사 출신 몇 명이 거론되고, 검사장 출신이 100억원 이상을 벌고도 여전히 욕심을 내 질시를 받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A급 전관 변호사들은 5000만원짜리 이하 정도는 생태계 유지를 위해 주변에 ‘분양’하는 게 예의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젊은 시절 한번 사법고시를 통과했다는 이유로 큰돈을 버는 데 대한 논란은 계속돼 왔다. 그럼에도 법조인 부모들은 자식에게 직업을 대물림해주고 싶어 했다. 다만 과거엔 아무리 검찰총장 대법관이라고 해도 자식이 머리 나쁘면 사법고시 장벽 탓에 법조인 직업은 물려줄 수 없었다.
그런데 고시낭인과 법조 순혈주의를 없앤다며 도입된 로스쿨은 어떤가. 로스쿨은 비싼 등록금 탓에 ‘돈스쿨’로 불리면서 법조인 지망생들에겐 진입 장벽을 하나 더 만들었다. 게다가 로스쿨 입학에도 부정이 개입됐다는 교육부 조사 결과(국민일보 3월 29일자 1·2면 보도)는 충격적이다. 법조인 부모가 자식 입학에 청탁을 한다는 사실은 로스쿨의 존립을 흔드는 사안이다.
로스쿨은 관리를 허술하게 하면 법조인 부모가 직업을 대물림해주는 편법 루트가 될 수 있다. 자식을 로스쿨에 넣고 변호사 시험 통과하면 좋은 로펌에서 경력을 쌓게 하고, 그런 경력으로 검·판사 임용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별 배경 없는 로스쿨 학생들 중에는 대출 받아가며 힘들게 공부해서 300만원 받고 변호사 생활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로스쿨 입학에도 청탁이 통한다면 로스쿨 전 과정에 불공정한 룰이 작동하는 셈이다. 이는 로스쿨 출신들이 일하는 검찰과 사법부의 신뢰에도 치명적이다.
최근 또 하나의 씁쓸한 이야기. 기아자동차의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1억630만원, 신입사원 연봉은 4590만원이었다. 월급 200만원짜리 회사 취직도 어려운 때에 대기업은 취준생들에겐 너무 높은 산이다. 그런데 이런 자리가 대물림된다면 어떨까. 정부는 28일 노조가 있는 사업장 2769곳을 조사한 결과, 25.1%에 고용세습 조항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 중엔 기아차도 포함됐다.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자녀를 우선·특별채용하는 건 일반 지원자의 기회를 빼앗는 격이다. 그야말로 현대판 음서제다.
이런 엉터리 룰이 횡행하면 청년들은 사회 진출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뜻을 펴보기 전에 사회에 불만부터 키우게 된다. 부모에게서 부와 직업, 명예까지 편법으로 물려받은 금수저들은 평생 당당하고, 부모를 잘못 만난 흙수저들은 가난과 멸시를 참으며 살아야 한다면….
요즘 재벌 3, 4세들의 계속되는 갑질 사건도 그런 토양 탓인지 모르겠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에 이어 요즘 모 대기업 부회장의 ‘운전기사 상습 폭언’ 사건으로 시끄럽다. 제발 부모덕에 떵떵거리는 사람들이 아등바등 열심히 사는 서민들의 가슴에 대못은 박지 말자. 근처 화장실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 책임이다.”(빌 게이츠) 우리 서민들도 이런 말을 납득할까.
노석철 산업부장 schroh@kmib.co.kr
[데스크시각-노석철] 금수저와 현대판 음서제
입력 2016-03-30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