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만개한 남녘의 꽃들이 윗녘으로, 윗녘으로 올라가 우리에게 사랑꽃잔치를 벌이게 할 겁니다. 꽃은 피고, 아기는 태어나야 하는데 피지 못한 생명이 있습니다. 어린 미혼모가 잉태한 생명입니다.
매년 10대 소녀 1만5000명이 임신하고 1만1000명이 낙태합니다. 영아 유기 사건도 종종 발생합니다. 그 소녀들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가족들은 딸의 출산을 수치로 여기고 세상의 시선은 차갑다 못해 혹독합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약 4000명은 출산을 한다는 것입니다. 40%는 국내외로 입양되고, 60%는 미혼모가 양육한다고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미래가 어두운 이 나라에서 자녀 양육을 선택한 미혼모는 우대받아야 합니다.
두 명의 미혼모와 자립에 성공한 한 엄마를 만났습니다. 엄마가 되면서 크게 바뀐 이들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양육하고, 공부하며, 자립을 준비합니다. 절망 대신 희망 찾기에 나선 엄마들을 만나 보시죠.
한 해 약 4000명의 미혼모가 출산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소재 애란원(대표원장 강영실) ‘청소년 미혼모자 공동생활가정’에서 세훈이 백일잔치가 열렸습니다. 정희(18·가명·이하 미혼모 가명)는 4.36㎏으로 태어난 아들 세훈이를 안고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우람한 세훈이는 장군감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일곱 명의 어린 엄마들이 세훈이를 축복합니다.
“아프지 말고 잘 커라!”
“엄마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
“왕자님처럼 축복받은 아이로 크길 바란다!”
정희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임신했습니다. 3개월 무렵 임신 사실을 알고 낙태를 생각했습니다. 부모님께는 8개월 때 말씀드렸더니 지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내 핏줄을 어떻게 입양 보내겠냐며 낳아 키우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이었습니다. 성적이 우수해 상위권 대학을 준비했던 정희는 담임선생님께 자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애제자의 상황에 속상해하던 선생님은 학업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는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공부할 수 있는 애란원을 안내했습니다. 제자의 아기가 태어나자 먼 발걸음으로 찾아와 아기 옷과 봉투를 주면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참 고마운 선생님입니다.
정희는 유치원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애란원이 운영하는 ‘나래대안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학적은 본교에 있고 졸업장도 본교에서 받습니다. 아기 돌보고, 공부하고, 자립을 준비하느라 바쁘지만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학생 엄마가 백일 맞은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엄마가 처음에 두렵고 무서워서 세훈이를 숨기고 또 나쁜 생각도 해서 미안해. 엄마가 세훈이를 위해서도 열심히 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엄마가 사랑 많이 주고 또 사랑 많이 받게 하고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해줄게. 지금 코도 막히고 기침도 해서 컨디션도 안 좋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엄마도 힘들기만 하네. 차라리 대신 아파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얼른 나아서 웃는 모습 보여주고 활기찬 모습 보여줘. 엄마가 사랑해.”
아기 키우며 공부하는 소녀의 꿈
지난 15일 나래대안학교 임시교실에서 만났던 희진(18·고2)이는 쾌활한 소녀입니다. 하지만 웃음 뒤엔 아픔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세 살 때 이혼했고, 떠난 엄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빠마저 병들면서 떠돌이가 된 희진이는 쉼터에서 생활하다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엄마가 없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희진이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임신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퇴했습니다. 2014년 9월 1일, 애란원에 들어와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요양원에 누워 계신 아빠는 올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을래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희진이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습니다. 엄마가 되면서 눈물을 더욱 훌훌 털어 버렸습니다. 이젠 소녀도 혼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쾌활 소녀 희진에게 두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힘든 점은?
“아기 키우면서 공부하는 것. 그리고 아기가 고집피울 때.”
-좋은 점은?
“혼자였을 때는 외로웠는데 아기를 낳으면서 외롭지 않게 된 것. 그리고 아기가 말을 하며 재롱을 피울 때.”
희진이는 아기를 데리고 요양원에 계신 아빠에게 갔습니다. 자신처럼 인생이 부서질까 봐 딸의 출산을 반대했던 아빠는 손자를 안겨드리자 무척 기뻐했습니다. 병든 아빠에게 드린 최고의 선물입니다. 눈물 대신 웃음, 절망 대신 희망을 택한 희진이에게 또다시 두 가지 질문했습니다.
-꿈은?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것!”
-희망은?
“사랑하는 내 아들을 예쁘게 잘 키우는 것!”
자격증 취득→취업→저축→자립 성공
세무사무소 과장 윤선(33)씨는 워킹맘입니다. 꿈은 세무사, 목표는 방송통신대 졸업, 희망은 예쁜 딸(8)과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최고의 엄마 윤선씨를 응원합니다.
“나 자신 말고는 믿을 구석이 없었습니다.”
2009년 당시 미혼모 처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갈 곳도, 기댈 곳도 없던 윤선씨는 애란원에 입소했습니다. 애란원은 미혼모 직업교육과 자격증 취득, 그리고 취업에 집중 투자합니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주기 위함입니다. 윤선씨는 전산세무회계 교육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세무사무소에 취업했습니다.
취업하자마자 청약저축에 가입했습니다. 정기적금, 희망키움통장, 장기우대저축통장…. 조약돌로 돌탑을 쌓듯 한푼 두푼 모은 윤선씨는 LH 한부모가족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해 살고 있습니다. 현재는 통장이 6개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지하철을 타고 가다 어린이집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아빠에 대해 물었습니다. 엄마아빠와 함께 가던 그 친구는 모녀지간인 친구 모습이 이상해 보였던 것입니다. 딸아이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빠 없는 아이’ 듣지 않게 할 거예요
여자로선 약했지만 엄마가 되면서 강해진 윤선씨는 ‘아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한부모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양부모 가정 못지않게 아이를 키웁니다. 어떤 가정보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윤선씨는 위대한 엄마입니다.
“아이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키웁니다. 동시에 타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가르칩니다. 딸아이는 엄마가 안아주는 걸 좋아하지만 친구가 있을 때는 안아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하고 싶은데 못하면 속상하잖아, 우리 둘이 있을 때 안아줘!’라고 속삭입니다. 친구를 배려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제가 큰 어른이 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애란원은
반애란 선교사가 설립… 미혼모 대안학교 건축비 부족해 어려움
한국장로교복지재단 ‘애란원’은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된 반애란(미국명 앨리노어 반·1921∼2015) 선교사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반 선교사는 1960년 윤락여성, 가출소녀, 미혼모 등을 돌보는 ‘은혜의집’ 등을 운영하다 77년 은퇴했습니다. 반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애란복지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82년 대한예수교장로교회 통합 총회에 기증하면서 애란원으로 신고됐습니다.
애란원 산하에는 미혼모자 생활시설(애란원, 마포애란원) 미혼모자 공동생활가정(애란모자의집, 애란영스빌) 미혼모 공동생활가정(애란세움터) 지역사회센터(나·너·우리한가족센터, 위기임신지원센터) 미혼모 위탁형 대안학교(나래대안학교)가 있습니다. 미혼모의 건강한 삶과 자립을 위한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습니다.
애란원은 학생 미혼모를 위한 나래대안학교와 생활관을 운영 중입니다. 33년 전 지어진 건물에서 2010년부터 시작된 대안학교는 시설 노후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난해 11월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에 4층 규모의 건물을 신축 중입니다. 올 9월 완공 예정인 가운데 공사비 부족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스펠 라이터 조호진(시인)
사진 임종진(작가)
jonggyo@gmail.com
[소년이 희망이다] “이런 너를 두고 나쁜 생각해서 엄마가 미안해”
입력 2016-03-29 2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