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랐다. 회전은 예리했고, 브레이크도 잘 걸렸다. 보이지 않는 공간을 파고드는 능력도 일품이었다.
덩치가 좋지만 느린 알제리 수비수들은 쩔쩔 맸다. 문창진(23·포항 스틸러스). 피지컬 수치는 170㎝에 63㎏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플레이는 누구보다 크고 담대하다. 선수들의 체구가 갈수록 커지고, 공간을 내주지 않는 현대축구의 흐름 속에서 문창진은 단신 공격수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며 ‘신태용호의 황태자’로 우뚝 섰다.
문창진은 지난 28일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알제리와의 23세 이하(U-23) 올림픽 축구대표팀 평가전(한국 3대 0 승)에서 두 골을 몰아쳤다. 후반 14분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김현의 패스를 받아 왼발 슈팅을 날려 2-0으로 달아나는 추가골을 터뜨렸다. 후반 30분엔 상대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을 득점으로 연결해 멀티골을 기록했다. 앞서 25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알제리와의 1차 평가전에서도 전반 30분 2-0을 만드는 골을 넣었다.
문창진의 득점 행진은 놀랍기만 하다. 올해 들어 올림픽 대표팀이 기록한 21골 중 7골을 책임졌다. 지난해 3월 출범한 ‘신태용호’는 현재 44골을 기록 중인데 이중 문창진이 해결한 골이 11골에 달한다.
그동안 한국에는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 이동국 등 정통 스타일 스트라이커가 주목받아 왔다. 문창진 같은 ‘리틀맨’은 드물다. 그러나 해외로 눈을 돌리면 최고의 단신 공격수가 한둘이 아니다. 세계 최고 공격수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의 키도 문창진과 마찬가지로 170㎝다. 사비 에르난데스(170㎝·알 사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170㎝·바르셀로나), 세르히오 아구에로(173㎝·맨체스터 시티), 세스크 파브레가스(175㎝첼시) 등도 마찬가지다. 키가 작은 이들은 큰 덩치의 ‘빅맨’사이에서 빠른 발과 급격한 방향전환으로 좁은 공간을 포착해 골을 터뜨린다.
“상대가 붙기 전에 반박자 빠르게 움직이는 게 내 장점입니다. 최전방 2선에서 늘 골 찬스를 기다리고, 골 찬스를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문창진은 2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된 뒤 이렇게 많은 골을 넣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사실 골잡이보다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는 게 더 좋아요. 이니에스타처럼 상대방의 치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패스를 할 수 있으니까요.”
문창진은 지난 밤 골을 넣은 뒤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의 최진철 감독과 통화했다고 한다. 최 감독은 “창진아, 포항 경기에서도 골 좀 많이 넣어줘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창진은 최근 몇 년 동안 웃지 못했다. 중요한 고비마다 찾아온 부상 때문이었다. 2012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십에서 4골을 넣으며 ‘이광종호’의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끊임없는 부상으로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2013년 터키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선 부상으로 최종 엔트리에 낙마했다.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된 뒤 신태용 감독의 총애를 받다가 지난해 7월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을 다쳐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문창진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겸해 열린 AFC U-23 챔피언십에서 4골을 몰아치며 한국 축구의 올림픽 본선 8회 연속 진출에 큰 힘을 보탰다.
“지금 이 감각을 그대로 유지해 올림픽 무대에서 큰일을 내고 싶어요.” ‘작은 거인’ 문창진의 꿈이 무르익어 간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작은거인 ‘문’, 신태용호 ‘리틀맨’ 공격수 우뚝
입력 2016-03-30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