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컨덕트’ 출연 이병헌, ‘로망’ 알파치노 격려 감격… 위상 높아졌지만 악역·낮은 비중 한계

입력 2016-03-29 20:25
코리아스크린 제공
배우 이병헌(46)은 할리우드의 톱스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28일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배우로는 처음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그의 성공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이병헌의 올해 첫 할리우드 진출작 ‘미스컨덕트(Misconduct)’(감독 시모사와 신타로)가 30일 관객을 찾는다. 이병헌의 할리우드 활동에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연기력 장단점과 해결 과제를 살펴본다.

◇거장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영화는 재벌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의 제보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거래 뒤에 숨겨진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범죄스릴러다. 이병헌은 의뢰를 받고 사건을 해결하는 히트맨 역을 맡았다. ‘양들의 침묵’(1991)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앤서니 홉킨스(79), ‘여인의 향기’(1992)로 역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알파치노(73) 등 연기파 거장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병헌이 할리우드의 쟁쟁한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처음은 아니다.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2009)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그는 ‘레드: 더 레전드’와 ‘지.아이.조 2’(2013)에서는 브루스 윌리스와,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에서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출연했다. 이병헌은 이전 작품에서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어색한 이미지를 드러냈으나 이번에는 주눅 들지 않는 연기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내부자들’에서의 자신감을 이었다고나 할까.

◇“괜찮다”는 알파치노의 격려에 힘을 얻다=홉킨스는 재력과 명성 뒤에 비밀을 감춘 재벌기업 회장 아서 데닝을 연기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알파치노는 복수를 위해 전쟁을 시작하는 대형 로펌 CEO 찰스 에이브람스로 카리스마가 여전하다. 이병헌은 이전 할리우드 작품에서 선보인 액션 연기 대신 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표현하는 등 변신을 시도했다. 강렬한 눈빛과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알파치노와 이병헌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하는 장면이다. 이병헌은 “가장 존경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알파치노와 연기해서 영광”이라며 “촬영 전에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숨이 멎을 정도로 긴장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카메라가 돌아가는 도중에 알파치노가 ‘괜찮다. 잘 안되면 다시 하면 된다’고 말해줘서 안정을 찾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알파치노의 격려에 이병헌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

◇악역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배역을 찾아야=이병헌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냉혹한 시선의 표정 연기가 볼거리다. 유창한 영어 대사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극중 로펌의 회계사인 그가 사건의 해결사 역할을 왜 자처하는지 알쏭달쏭하다. 더구나 그의 최후 장면은 어이가 없다. 러닝타임 105분 가운데 출연 분량도 많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 5편에 출연한 배우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것은 아닌지.

이병헌이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서 맡은 역은 액션영화의 악역이 대부분이다. 잠깐 나왔다가 좌충우돌하다 허무하게 죽는 모습이 많았다.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다. 다양하고 핵심적인 배역을 따내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카데미에서 수상자로 무대에 오르는 이병헌의 모습을 기대한다. 영화에서 정사 장면 등을 뽀얗게 칠한 게 눈에 거슬린다.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기 위한 조치다. 미국에서는 17세 이상 관람가인 R등급을 받았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