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양심으로 한·일 화해 외친 하나님의 사람”… 故 도이 류이치 전 의원 한·일 추모 예배

입력 2016-03-28 17:42 수정 2016-03-29 18:30
일본 도쿄 요도바시 교회에서 지난 26일 열린 도이 류이치 전 중의원 추모예배에서 고인의 딸과 아들, 동생 등 유가족과 참석자들이 설교를 듣고 있다.
추모사를 하는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위)과 설교하는 장상 전 총리서리(아래)의 모습.
故 도이 류이치 전 의원
신앙의 양심에 따라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해 앞장섰던 도이 류이치 전 중의원의 추모예배가 26일 일본 도쿄 요도바시 교회에서 열렸다(국민일보 1월26일자 29면 참조). 미네노 다츠히로 요도바시 교회 담임목사가 진행한 추모예배엔 고인의 딸과 아들, 동생 등 유가족과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 등 정계와 교계 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과 함께 한일기독의원연맹을 만들어 활동했던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과 장상 전 총리서리가 한국 측 대표로 참석했다.

◇“도이 목사는 일본의 양심일 뿐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모델”=장 전 총리는 로마서 6장 3∼5절 말씀을 본문으로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것’이란 제목의 추모 설교를 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성을 받은 자만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며 “도이 전 의원은 일본의 양심일 뿐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아름다운 모델이었다”고 말했다.

장 전 총리는 2011년 한국에서 열린 3·1절 예배로 정치적 시련을 겪고 탈당 후 정계은퇴까지 했던 도이 전 의원을 2014년 3월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만났을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 전 총리가 인간적인 심경에서 ‘당시 물러나지 말고 좀 더 버티지 그랬느냐’고 하자 도이 전 의원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기는 어려운 것이에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내 양심은 이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장 전 총리는 “정치인으로서 그분의 삶의 끝은 너무 아쉽고 슬프고 분노케 하는 대목이 있지만, 신앙인으로서 그분의 삶은 은혜롭다”며 “그분은 진정 하나님이 시대를 위해 준비하신 자이며, 하나님이 들어 쓰신 자였다”고 추모했다.

누구보다 고인과 가까웠던 김 전 장관은 일본 방문 내내 먹먹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김 전 장관은 “도이 전 의원은 올바른 역사인식, 하나님의 정의, 아파하는 사람들을 안고 치유하고 그들을 위해 뜨겁고 울며 기도하는 이 시대의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도이 전 의원의 뒤를 이어 미네노 목사를 제2기 한일기독의원연맹의 지도목사로 모시고 도이 전 의원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추모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간 나오토 전 총리도 예고 없이 참석해 “한·일 관계가 좋아지도록 늘 함께 도와주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정말 마음이 아팠다”며 “천국에서 우리의 활동을 보시고 함께 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도쿄크리스천대학 히로세 카오루 이사장, 도쿄성시화운동본부 오영석 회장, 도쿄기독실업인회(CBMC) 곤도 다카시 이사장 등도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했다.

◇유가족 “한국인과의 만남 통해 고인의 삶 비로소 이해해”=도이 전 의원의 아내는 건강상 문제로 이날 추모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추모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고인의 동생 켄이치씨가 대표로 인사를 전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던 ‘3·1절 기념 및 도이 전 의원 추모예배’에 참석했다. 그는 “형님은 항상 자기의 신앙의 부족함을 정직하게 간증했던 분”이라며 “동아시아의 상황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기도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선을 다해 행동했다”고 말했다. 켄이치씨는 별도 인터뷰에서 “형에겐 늘 뭔가 ‘벽’ 같은 게 있어서 사실 그의 삶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며 “형님이 돌아가신 뒤 김 전 장관 등 한일기독의원연맹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형이 어떤 사람들을 만나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추모예배를 마친 뒤 고인의 아들 준씨는 “평소 집에선 정치 이야기를 안 하셔서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아버님이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었다는 것을 늦게나마 알게 되서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님이 한국을 위해 일하다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했던 것에 대해 원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버님은 정치인이셨지만 그 이전에 목사셨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도쿄=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