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었던 27일 오후 7시쯤(현지시간) 파키스탄 동부 펀자브주 라호르의 굴샨에이크발 공원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폭탄이 터진 곳이 놀이터 옆이어서 어린이와 여성이 많이 모여 있었다. 부모들이 사체 더미 가운데서 울부짖으며 아이를 찾아 헤맸다.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대로 테러의 표적이 됐다.
영국 BBC방송 등 외신들은 파키스탄탈레반(TTP)에서 나온 급진주의 무장조직 ‘자마트울아흐라르’가 부활절 기념행사 중인 크리스천을 겨냥해 자살폭탄 테러를 벌였다고 전했다. 사망자는 어린이 17명을 포함해 최소 72명이다. 부상자 300명 가운데도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테러는 기독교인을 상대로 한 ‘반(反)기독교 테러’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소프트 타깃’ 테러가 벌어지는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펀자브 주정부는 “무슬림 사망자도 있다”면서 “이번 테러가 기독교인만을 목표로 자행됐다고 할 수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에사눌라 에산 자마트울아흐라르 대변인은 “부활절을 기념하는 기독교도를 목표로 공격했다”고 못박았다. 현장에 있던 시민 유사프 마시(50)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부활절 예배가 끝난 후 바구니에 싸온 음식을 나눠 먹으려던 참이었다. 공원에 있던 사람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기독교계와 인권단체들은 파키스탄 정부가 기독교인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파키스탄 인권단체인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국가위원회(NCJP)’의 세실 셰인 쇼드리 위원장은 “테러가 벌어진 공원은 오래전부터 부활절 기간에 기독교인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다”면서 “기독교 사회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전했다.
파키스탄에선 2013년에도 북서부 노스웨스트프런티어주 페샤와르의 한 교회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8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테러를 벌인 자마트울아흐라르는 지난해 3월에도 라호르에서 가톨릭 성당과 개신교 교회를 겨냥한 동시다발 폭탄테러를 저질러 10여명이 사망하는 등 파키스탄 내에서 반기독교 테러 행위를 일삼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기독교는 힌두교 다음으로 소수 종교다. 기독교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1.6% 정도다.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급진주의 무장단체의 만행은 특히 기독교가 소수인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심각하다. 이슬람국가(IS)는 지난해 2월 ‘십자가의 나라에 전하는 피의 메시지’라는 영상을 통해 리비아 등지에서 납치한 21명의 콥트교인을 참수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지난해 4월 소말리아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샤바브가 케냐 가리사 대학 캠퍼스에서 테러를 벌였을 당시에도 무장괴한들은 학생들에게 종교를 물은 뒤 기독교라고 답하면 즉시 총살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IS가 주시하는 유럽도 기독교를 대상으로 한 테러에 경계수위를 높이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영국은 기독교 가치 위에 세워졌다”면서 “테러리즘에 맞서 기독교 가치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역시 “기독교인이 테러 공격으로 인한 두려움에 압도당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부활절에 기독교인 겨냥… 파키스탄 공원서 자폭테러
입력 2016-03-28 20:44 수정 2016-03-29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