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까지 외주 받는 ‘비정규직’… 업주들, 산재보험 가입의무 없어 위험한 일 맡겨

입력 2016-03-29 04:02
지난 1, 2월 경기도 부천과 인천의 휴대전화 부품 납품업체에서 근로자가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이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납품하는 하청업체에서였다. 사고 피해자는 5명이었는데 모두 비정규직인 파견 근로자였다. 이들은 두 원청업체의 정규직 근로자가 다루지 않는 독성물질 메탄올을 이용해 작업했다. 인체에 덜 해로운 대체물질 에탄올이 있지만 가격이 40% 정도 수준으로 싸다는 이유로 하청업체는 파견 근로자에게 메탄올을 이용해 작업하라고 지시했다. 파견 근로자는 메탄올의 위험성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근로현장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사례는 일부 작업장의 이야기일까. 이재성·안준기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의 ‘근로환경에서의 위험노출 정도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모든 위험 요소에 더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에 노출될 확률은 비정규직이 최대 1.8배 높았다. 이 연구는 성별, 연령, 학력 등 변수를 통제하고 고용형태만을 고려해 위험 노출 위험도를 실증 분석한 국내 첫 사례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제공하는 한국근로환경조사 2014년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구체적인 분석 결과를 보면, 위험물질에 피부가 노출될 확률은 정규직의 경우 0.9%였지만 용역 근로자는 1.6% 수준이었다. 이 부연구위원은 “각각 100명의 근로자가 있다고 할 때 작업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위험물질에 피부가 노출되는 근로자가 정규직의 경우 0.9명인 데 비해 용역 근로자는 1.6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피로하거나 통증을 주는 자세로 일할 확률은 정규직 근로자는 8.6%였지만 일일 근로자는 14.5%까지 높아졌다.

비정규직 근로자 중에서도 특히 비전형 근로자들의 위험 노출 확률이 높았다. 비전형 근로자는 보험모집원 등 특수형태 근로자, 파견근로자, 용역근로자, 가정 내 근로자, 일일 근로자 등 일반적으로 근로방식이나 근로시간, 고용의 지속성 등 여러 면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인 근로자를 말한다. 위험요소를 16개로 분류했을 때 ‘화가 난 고객이나 환자를 다룸’ 요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전형 근로자가 가장 높은 확률로 위험 요소에 노출돼 있었다. 특히 용역 근로자는 9개 위험요소에서 노출될 확률이 가장 높았다.

과거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 바 있다. 2002년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실태 조사한 결과 제조업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비율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보다 약 6.3배 높았다. 비제조업 현장에서는 10.6배 높았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더 위험에 노출된 이유를 ‘위험의 외주화’로 설명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파견·용역 근로자 등에 대해 사업주는 산재보험 가입 의무가 없기 때문에 위험한 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는 단기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 안전교육이나 안전보호구 지급 등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부연구위원은 “고용형태별 직업 분포를 보면 정규직 근로자는 관리자나 사무직에 많이 분포돼 있는 데 반해 비정규직 근로자는 단순노무직이나 판매직에 많이 근무한다”면서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을 하고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에게 외주화하는 현상이 고착됐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