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희망의 메시지-몰트만 박사-조용기 목사] “사회 곳곳 절망의 그림자…그래도 희망을 가져라”

입력 2016-03-28 20:47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왼쪽)와 위르겐 몰트만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오른쪽)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조 원로목사 집무실에서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의 사회로 대담을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왼쪽)와 위르겐 몰트만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조 원로목사 집무실에서 특별대담을 갖기 전 손을 맞잡은 채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희망의 신학’으로 친숙한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 위르겐 몰트만(90) 박사와 ‘삼중축복’으로 상징되는 긍정의 목회자 조용기(80)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조 원로목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1995년 첫 만남 후 20년 넘게 영적 교제를 이어온 두 사람은 출발점은 달랐지만 삶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경험한 하나님을 통해 희망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통한다. 대담은 두 사람의 만남에 가교 역할을 해왔던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의 사회로 1시간 조금 넘게 진행됐다.

사회=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20년 전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 몰트만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조 목사는 10대 시절 투병생활을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했다. 그래서 몰트만 박사는 사회적 영성으로부터 시작해 개인의 구원으로 관심을 확대했고, 조 목사는 삼중축복으로 대표되는 개인의 신앙에서 시작해 사회 구원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난 셈이다. 지금 시대에 영성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키울 수 있을까.

△몰트만 박사=영성이란 하나님의 영을 기대하는 곳에서 경험을 통해 개발될 수 있다고 본다. 한 개인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영이 존재할 때 개인의 영성이 개발될 수 있다. 성령이 육신에 부어 넘칠 때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성이, 생명이, 사랑이 자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지구라는 이 땅에 차고 넘칠 때 생태적인 영성이 개발될 것이다. 이렇게 성령이 우리 마음에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심령과 마음을 키우고, 성령의 힘을 체험할 수 있다. 성령의 힘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일 뿐 아니라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로부터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통해 더 큰 사랑과 희망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조용기 원로목사=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한국사회는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회 같다. 모두가 부정적으로 말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비관적이다. 모두가 우리 삶에서 행복을 이야기할 동력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목회자로서 사람들을 돕고자 했을 때 나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비관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철학적으로나 사회학에서나 이를 바꾸려는 노력이 많았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못했다.

오로지 갈보리산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이, 삶이 변화될 수 있다. 예수를 바라볼 때 비로소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예수만이 내 삶의 답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몰트만 교수의 책을 매우 즐겁게 읽었다. 깊이 있게 영성면에서 그리고 사회적·정신적으로 사람들이 희망을 품도록 도울 수 있는 내용이었다. 희망은 비전을 품게 만들고, 그것에 의지해서 또 살아가게 만든다. 내 마음 속에 행복이 없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조 목사님의 말씀은 영성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의미인 것 같다.

△몰트만 박사=고난 받은 예수님이 내 삶을 구원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예수의 부활을 통해 나는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낙관주의자로 살 수 있다는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구 소련이 그렇게 쉽게 붕괴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독일 통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로 통일은 이뤄졌다. 지금 너무나 참담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커다란 희망을 보게 된다. 시리아 내전으로 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독일인의 80%가 이들을 수용하는 데 찬성하고 이들을 받아들였다. 그들을 도우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생겼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사람들은 이방인을 환대하고, 그들의 삶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돕고 있다. 테러리즘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사적인 행동만으로는 테러리즘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인간의 마음을 통해 치유 받은 젊은 모슬렘들, 그리고 그들을 돕는 독일 사람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최근 파리 테러에 이어 브뤼셀에서 또 다시 테러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예수님은 모슬렘을 대적하지 않았다. 모슬렘을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조 목사=한국전쟁 직후 한국인들 역시 매우 절망적이고 낙담해 있었다. 희망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게을렀다. 그들이 희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 도왔다. 하나님은 당신들이 번성하길 바란다. 인생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부르신 대로 바뀔 수 있다고 믿으라며 격려했다. 내가 그들을 성공적으로 격려했을 때 그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새벽기도회를 통해 그 힘을 받았다. 희망을 갖게 되자 그들은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성령의 능력을 이끌어냈다.

△몰트만 박사=조 목사의 ‘삼중축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것에 한 가지를 더해서 외로운 군중들이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

-두 분은 부활 희망을 말하는 것 같다. 희망은 이미 십자가로부터 온다는 이야기 같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희망의 신학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확대될 수 있을까.

△몰트만 박사=성령은 부활의 영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불의와 폭력, 빈곤과 가난에 맞서도록 격려한다. 지난해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을 격려하고 도왔던 독일 사람들의 모습은 영적인 흐름이었다.

△조 목사=우리가 희망을 품으면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우리가 희망이 없을 땐 계속 부정적인 생각만 갖게 되지만 성령이 움직이시면 희망을 안겨주신다. 젊은 세대들에게 나는 이것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영적인 힘을 갖게 되고 그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사회를 엄청나게 바꾸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몰트만 박사=나는 절망은 죄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성령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그런데도 우리가 낙담한 채 뒤로 물러나 앉아있다면 그것은 죄다.

△조 목사=우리가 기도할 때 단순히 믿음만 품게 되는 것이 아니다. 비전을 갖게 된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더 큰 비전을 보게 된다. 우리가 성령을 간구하며 기도할 때,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우리에게 비전과 꿈을 함께 주신다.

△몰트만 박사=주의 영이 임하면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는 약속을 하셨다(행 2:17).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노인들 역시 꿈을 가져야 한다. 요엘 선지자 역시 늙은이들에게 약속하지 않았나. 당신은 80세, 나는 90세. 우리는 노인이다.(웃음)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고, 갈수록 첨단과학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젊은이들을 격려하고 영적으로 무장시킬 수 있을까. 희망은 현실적으로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으로 품어야 한다. 그리고 희망은 고통 속에서,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고통을 통해 온다. 젊은이들 역시 이런 희망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데, 오히려 인공지능 등 최첨단 과학의 발달을 보면서 기술에 대한 희망과 낙관을 할 뿐 인간과 신에 대한 희망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조 목사=우리는 몰트만 교수가 100세 넘어서까지 살기를 바라는데….

△몰트만 박사=하하. 아니다. 삶의 의미는 오래 사는 것,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에 있지 않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는 것, 거기에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깊이 있는 삶의 경험이다. 과연 컴퓨터가 사랑을 할 수 있나. 아니다. 당신이 컴퓨터를 사랑할 순 있어도 컴퓨터가 당신을 사랑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조 목사=사람들은 언젠가 컴퓨터가, 과학기술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의 모든 것을, 심지어 컴퓨터도 우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정리=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20년 지기’ 몰트만 박사-조용기 목사
각자 성령 체험·희망영성 대화… 사상의 깊이·연륜 묻어나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인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1970년대 ‘희망의 신학’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등의 저서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인간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하나님이야말로 인간을 구원하는 분이라고 설파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포로로 붙잡히고, 애인을 잃어버린 상실감 속에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신앙을 갖게 됐다. 그의 신학은 당시 고통받고 핍박받는 제3세계 국가의 민중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1975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몰트만 박사는 한국의 강단신학자로 안병무 박사를 높이 평가했다. 안 박사와 더불어 ‘성령신학’으로 목회를 해온 조용기 원로목사도 창의적 사고를 지닌 신학자로 꼽았다.

조 원로목사는 “1970년대 당시 강원용 목사가 나에게 몰트만의 신학을 소개하며 가까이 지내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실제로 몰트만 박사가 독일을 방문한 조 원로목사를 찾아가며 시작된 이들의 인연은 20년 넘게 지속돼 왔다. 2005년 조 원로목사가 사회 구원의 해를 선포하며 사역 전환 방침을 전했다는 소식을 들은 몰트만 박사가 특별기고문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날 대담에서 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각자 겪은 성령의 체험과 이를 토대로 한 희망의 영성을 이야기하며, 비록 실낱같더라도 우리가 끝내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를 담담히 들려줬다. 단순하고 간결한 표현을 썼지만, 자기만의 통찰과 사상으로 최고 반열에 오른 사람들만 보여줄 수 있는 깊이와 연륜이 묻어났다.

조 원로목사가 몰트만 박사에게 “저보다 10살 위인데 더 젊어 보인다”며 덕담을 하는 등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인공지능과 컴퓨터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몰트만 박사는 “글을 쓸 때 연필을 쓰지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나의 모든 책은 내 손으로 쓰였다”고 하자 조 원로목사는 “나 역시 그렇다. 우리는 결국 같은 세대”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몰트만 박사는 영어로 출간된 최근 저작을 선물로 증정했다. 조 목사와 제자들이 며칠 전에 지나간 몰트만 박사와 조 목사의 생일 축하를 겸해 오찬 모임을 준비했다. 몰트만 박사는 이번 방한 중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 때 설교를 하려고 준비해 왔다. 하지만 병석에 있는 아내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고, 원고만 전달한 채 25일 독일로 떠났다.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