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잔잔한 목소리로 내게 성경을 읽어주었다. 찬송가도 불러주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이렇게 낭랑하고 좋았는지 새삼스러웠다. 건강하게 몸을 움직이고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감사한지 병실에 갇힌 다음에야 새삼 깨달았다.
아내가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을 읽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주님의 도움을 받아 이 시험을 감당하고 치료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난 그때까지 물리치료도 안 받겠다고 거절하다가 성경 말씀에 마음을 돌려먹었다. 내 의지로 이제 몸을 움직여보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남을 넘겨 쓰러뜨리고 두 손을 번쩍 들었던 내가 이제 내 몸을 일으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며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뿌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도와주세요. 제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27세 한창인 제가, 아내와 아들까지 있는 제가, 누워만 있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난 새벽 5시에 눈을 떠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이라야 몸을 일으켜 앉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하루에 세 번, 한 시간씩 운동했다. 당시 세브란스물리치료실에는 캐나다에서 온 구애련 선교사가 있었다. 구 선교사는 나의 말초신경을 회복시키기 위해 정성을 다해 내 손을 만져주면서 기도해 주었다. 항상 밝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맞아 정신적으로도 큰 의지가 되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나의 불타는 의지가 도무지 소생할 것 같지 않았던 나의 손을 조금씩 움직이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손을 들 수도 감촉도 없던 내가 변화를 보이니 의료진도 환호성을 질렀다.
손의 기능을 어느 정도 회복한 나는 용기를 얻어 이번엔 일어서는 연습에 도전했다. ‘스탠딩 밸런스’라 불리는 이 재활훈련은 서서 3분을 있어야 했는데 누워만 있던 사람이 서니 피가 밑으로 흘러 금방 피부가 퍼렇게 부풀어 올랐다.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스스로 일어나 앉을 수 있어 너무나 기뻤다. 그런데 구 선교사는 이런 내게 숟가락과 죽 그릇을 갖다 주면서 혼자 떠먹어보라고 했다. 반은 흘리며 죽을 떠먹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전신마비로 평생 손도 못쓸 줄 알았던 내가 아내와 어머니의 기도, 구 선생의 헌신적인 재활치료, 나의 의지로 간신히 손까지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어 휠체어 타기까지 성공한 나는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신앙생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말렸지만 가족들과 택시를 타고 당시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전도집회에 며칠간 참석했다. 메시지를 통해 크게 은혜를 받았고 신유기도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무렵 병원에서는 이제 내게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며 퇴원을 종용했다. 그나마 병원에 있어야 재활치료를 받으며 편의가 제공돼 버텼으나 결국 휠체어를 탄 채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는 보험이나 보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나였기에 아내가 가장노릇을 해야 했다. 그러나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파출부나 점원, 잡일 정도였고 그나마 열심히 일해도 온 식구가 밥 먹기도 힘들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역경의 열매] 정덕환 <4> 재활훈련 8개월 만에 처음 스스로 일어나 앉아
입력 2016-03-28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