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법… ‘증거법’에 번번이 발목

입력 2016-03-27 17:40 수정 2016-03-27 21:40

검찰이 디지털 증거 관련법 개정을 목적으로 칼을 빼들었다. 55년 전 ‘아날로그 법체계’ 때 만들어진 증거법 규정이 현재의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맞춰 정비되지 않으면 부패범죄나 공안 분야 수사가 번번이 벽에 막힐 거란 우려가 작용했다. 검찰은 디지털 자료에 대한 증거 인정 문제뿐 아니라 이를 수집하기 위한 압수수색 절차에 대해서도 법원이 과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인식한다. 검찰 관계자는 27일 “기존 증거법 판례는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규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 아닌 피고인이 재판하는 꼴”=대검이 디지털 증거 규정 개선을 위해 신설한 태스크포스(TF)는 형사소송법 313조 1항의 전문(傳聞) 법칙 개정을 최종 목적으로 한다. 해당 조항은 작성자가 “내가 쓴 것이 맞다”고 시인하지 않는 한 이메일 첨부파일이나 컴퓨터에서 나온 문건 등 디지털 정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1961년 개정된 이래 바뀐 적 없는 전문 법칙이 디지털 증거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탓에 수사 사각지대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야당을 비판하고, 정부·여당을 옹호하는 글을 올린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의 이메일함에서 텍스트 파일 두 개를 찾았다. 정치적 이슈가 매일 정리된 ‘425지논.txt’ 파일과 트위터 계정 등이 정리된 ‘ssecurity.txt’ 파일이다.

이 파일에서 파생된 트윗글만 27만여건에 달했다. 재판의 최대 쟁점은 두 파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두 파일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심리전단 직원이 “내가 작성한 기억이 없다”고 버텼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디지털 문건 작성자의 의사에 따라 증거능력이 좌우됐다”며 “사실상 판사가 아닌 피고인이 재판을 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종이 서류의 경우 필적 또는 서명·날인으로 작성자를 비교적 쉽게 특정할 수 있지만 디지털 문건은 이 입증이 어렵다는 게 딜레마다. 검찰은 “작성자의 다른 전자정보와 비교해 패턴을 분석하고, 작성자만이 알 수 있거나 사용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증거능력을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법원 역시 증거법 관련 조항의 개정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을 파기하면서 “형사소송법 313조 1항의 규정을 정보화 시대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는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 세상, ‘농경시대’ 증거법 바꿔야=검찰은 녹음·영상 파일 증거에 대한 기준도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입장이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당시 제보자가 녹음한 파일의 증거능력이 문제가 됐다. 제보자는 2011∼2013년 RO 회합과 관련된 47개 녹음 파일을 수사기관에 건넸다. 35개 파일이 사본이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원본이 없는 상황이었다. 대법원은 원본이 없는 녹음 파일 15개에 대해 “사본의 재복사본일 가능성이 있다”며 증거능력을 배척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디지털 자료들이 스마트폰, USB, 하드디스크 등 각종 디지털 저장매체를 넘나들면서 복제되는 세상인데, 법원은 항상 원본을 갖고 오라고 한다”며 “2년마다 스마트폰을 바꾸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절차 규정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행법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 시 ‘급속을 요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피의자나 변호인에게 사전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방해로 실체적 진실 규명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피의자·변호인 참여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수사 대상자들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많아 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 반발이 예상된다.

정현수 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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