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밤 10대 소녀 3명이 나이지리아 북부의 국경을 넘어 카메룬 리마니 지역으로 잠입했다. 셋은 지시대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찾아갔다. 폭탄의 기폭장치를 터뜨리기 일보 직전, 가장 어린 소녀가 일행에서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소녀는 사람들에게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몸에 두른 폭탄을 보여주며 자신이 자살폭탄 테러범이라고 실토했다. 남아 있던 두 소녀 중 한 명은 당황해하다 그 자리에서 붙잡혔고, 다른 한 명은 현장에서 달아나 나이지리아로 갔다.
영국 BBC방송과 미국 공영라디오 NPR은 도움을 요청했던 15세 소녀가 2년 전 나이지리아 북부 치복의 기숙학교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학생 276명 가운데 한 명이라고 27일 보도했다. 이 소녀가 테러를 실행하기 직전 달아나 자수함으로써 그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던 피랍 여학생들이 보코하람의 ‘테러 도구’로 악용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와 카메룬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테러단체다.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이 목표다. 지난해 3월 이슬람국가(IS)에 충성을 맹세한 뒤 테러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카메룬 국영 라디오 기자인 모키 킨드제카는 NPR과 인터뷰에서 “자수한 소녀는 극도로 지쳐 있었으며, 세뇌를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면서 “특히 심하게 학대를 당한 듯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BBC방송은 카메룬 당국이 이 소녀의 신원을 나이지리아에 통보해 현재 부모로 추정되는 이들이 딸과 상봉하기 위해 카메룬으로 떠났다고 전했다. 부모는 치복에서 여학생 석방운동을 벌이는 단체의 대표를 맡아왔으며, 납치된 딸 이름은 ‘리프카투’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코하람이 2014년 4월 여학생들을 납치할 당시 가장 어린 학생은 13세였다. 이번에 자수한 여학생이 15세인 점을 감안하면 가장 어린 학생들까지 테러에 동원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킨드제카 기자에 따르면 카메룬에서는 최근 몇 년간 100여건의 자폭테러가 발생했으며, 이 중 95%는 10대 또는 20대 여성에 의해 벌어졌다. 때문에 2년 전 납치된 여학생 상당수가 이미 자폭 테러로 희생됐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은 학생들 역시 앞으로 있을 추가 테러에 동원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는 지난 2년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까지 나서 전개한 글로벌 캠페인 ‘나이지리아 소녀를 돌려 달라(Bring Back our girls)’ 운동이 결국 무위로 끝나게 됐음을 시사한다. 국제사회가 반짝 목소리만 냈을 뿐 구출작전 등 실천에는 소홀히 한 결과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폭탄벨트 입고 도망친 보코하람 납치 소녀
입력 2016-03-27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