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스무 살 말라깽이 백인 청년은 창백한 흰 얼굴이 검붉은 색으로 변할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내 친구를 괴롭힌 녀석들이 누구야.”
청년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한 무리가 걸어나왔다. 청년은 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보다 큰 덩치들은 땅에 고꾸라졌다. 심한 청각 장애로 잘 듣지 못하는 자신의 친구를 ‘왕따’시키며 괴롭혔던 악당을 두들겨 팬 혐의로 말라깽이 청년은 기소됐다. 잉글랜드 셰필드, 19∼20세기 영국 2차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이젠 쇠락의 길로 접어든 곳. 2007년 도시의 길모퉁이 술집에서 벌어진 이 일로 청년은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6개월 동안 전자발찌를 차야 했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청년은 어디에도 갈수 없는 통행금지 조치도 당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제이미 바디(29·레스터시티).
셰필드 축구클럽 소속이던 바디는 그렇게 ‘축구 유망주’에서 ‘사고뭉치’로 찍혀 클럽에서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전자발찌를 차고 달리고 또 달렸다. 깜깜한 밤에도 혼자 공을 찼다. 물론 그를 받아준 프로구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2009년 바디는 ‘이제 축구는 그만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의료용 부목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레드 넥(Red Neck)’이 됐다. 레드 넥은 햇볕에 타도 피부가 검어지지 않는 백인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목이 빨갛게 익도록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연명하는 백인이란 뜻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으로 오면 대학입학 준비를 했다. 축구로 못다한 꿈을 스포츠과학 전공자로 변신하고 싶었다. 그때 8부 리그 팀 스톡스브리지파크 스틸스가 바디를 불렀다. 주급 30파운드(5만원). 일주일 내내 축구로 번 돈으론 용돈조차 되지 않았다. 무거운 목재를 하루에도 수백 번씩 짊어지고 옮기는 노동자 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일을 마치면 들녘에서 축구공 하나로 혼자 훈련했다. 잠에서 깨면 공장으로, 퇴근하면 경기장으로, 밤늦게 귀가하면 잠에 곯아떨어졌다.
6∼7부 리그를 거쳐 2011년 5부 리그 플리트우드타운으로 입단했다. 그해 31골을 퍼붓고 팀 우승을 이끌면서 인생의 대반전이 시작됐다. 당시 2부 리그 소속이었던 레스터시티의 러브콜을 받았다. 2012년 아마추어리그 사상 최고액인 100만 파운드(약 16억5000만원)의 이적료로 레스터시티에 입단했고, 2013-2014 시즌 2부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세계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의 무대’ 프리미어리그 경기장을 밟게 됐다.
레스터시티는 그의 19골에 힘입어 올해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다. 6년 전까지 용돈벌이도 못하던 그의 주급은 이제 8만5000파운드(1억3200만원)다.
지난 27일 독일 베를린올림피아스타디온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독일 대표팀의 A매치 경기에서 바디는 천금 같은 동점골을 넣었다. 가슴에 잉글랜드 대표팀의 전통인 ‘쓰리 라이언(The Three Lions·삼사자)’ 문양을 새기고 말이다. 결국 잉글랜드는 독일 ‘전차군단’을 3대2로 꺾었다.
“스타가 됐다고 내 인생이 바뀐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난해 말 한창 골잡이로 주가를 올리던 바디는 레스터시티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연습하고 집에 돌아와 강아지를 돌보고 아침이 되면 경기장으로 간다”고 했다. 가장 비참한 인생의 한 시기에 그가 배운 삶의 교훈과 습관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는 뜻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전자발찌 차던 청년, 英축구 황태자로 날다… ‘버드’된 바디
입력 2016-03-28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