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모규엽] 바둑의 가치

입력 2016-03-27 18:13

바둑의 역사는 전설 속 요순시대(堯舜時代)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진(晉)의 장화(張華)가 저술한 ‘박물지(博物志)’에 ‘요조위기단주선지(堯造圍碁丹朱善之)’라는 문장이 있다.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어 아들 단주(丹朱)를 가르쳤다는 뜻이다. 삼국사기에도 고구려 장수왕이 바둑을 좋아하는 백제 개로왕에게 바둑을 잘하는 도림이라는 승려를 첩자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에서의 신선놀음도 바둑이다.

유구한 역사를 가졌기에 바둑에서 유래된 말이 아주 많다. 특히 스포츠나 정치권에서 바둑 용어가 자주 쓰인다.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뜻의 ‘호구(虎口)’란 단어는 바둑에서 나왔다.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여 있고 한쪽만 트인 그 속을 호구라고 한다. TV 드라마 제목 ‘미생’도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꽃놀이패도 화투 용어 같지만 엄연한 바둑 용어다. 한쪽은 져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지만 반대쪽은 반드시 이겨야만 큰 피해를 모면할 수 있는 패를 말한다. 또 활로는 원래 돌이 뻗어 살아날 수 있는 바둑판 위의 교차점, 사활은 돌의 살고 죽음을 의미한다. 이밖에 묘수, 악수, 신의 한 수 등 수(手)자가 들어가는 것 모두 바둑에서 나온 말이다. 역시 바둑은 상대와의 기싸움과 노림수 등이 한데 어우러져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데 묘미가 있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 대결이 화제를 모았다. 결과는 알파고의 4대 1 승리였다. 이제 바둑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기기가 더욱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알파고에는 이런 바둑의 묘미를 느낄 수 없다. 알고리즘에 따라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곳에 돌을 두도록 프로그램화돼 있을 뿐이다. 오히려 일반 대중은 제4국에서 이 9단이 놓은 78수를 신의 한 수로 부르며 짜릿함을 느끼고 있다. 인생이 담겨있는 바둑. 그래서 바둑의 가치는 없어지지 않는다.

모규엽 차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