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9시 반쯤 서울 용산구 서울역 3층 대합실 화장실 옆에 수상한 가방이 놓여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반이 출동해 시민을 대피시키고 가방을 열어본 결과 폭발물은 없었다. 어깨에 메는 배낭 안에는 의류와 담뱃갑 등이 있었을 뿐 부탄가스처럼 폭발을 일으킬 만한 물질이나 도구는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가방을 유실물센터에 넘겼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대형 테러가 빈발하는 가운데 국내에서 폭발물 의심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 주인과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가방이 공공장소에 오래 방치된 경우다. 그때마다 군경이 출동하지만 실제 폭발물이 나온 사례는 거의 없다.
경찰청은 지난해 1월 1일부터 이달 23일까지 112로 접수된 폭발물 의심 신고가 최소 71건이라고 25일 밝혔다. 월평균 4, 5건씩 접수됐다. 이 건수는 112신고 통합시스템에서 ‘폭발물’이라는 단어로 검색한 뒤 포탄과 수류탄 등 실제 폭발물을 신고한 경우를 제외한 수치다. ‘폭발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수상한 가방이 놓여 있다”는 식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실제 폭발물 의심 신고는 더 많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폭발물 의심 신고는 대형 테러 발생 직후 급증하는 경향을 보였다.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테러를 당한 지난해 1월에는 5건, 2월에는 9건으로 늘었다. IS는 당시 추가 공격을 예고하면서 공포를 부추겼다.
지난해 7월 0건이었던 폭발물 의심 신고는 8월 4건, 9월 6건으로 두 달 연속 늘었다. 8월 18일 태국 방콕 도심의 에라완 사원 인근에서 폭탄이 터져 140여명이 사상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10월에 2건으로 다시 낮아졌던 폭발물 신고는 동시다발적 파리 테러가 벌어진 11월 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서는 1월 4건, 2월 6건, 3월에는 23일까지 7건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신고자들이 폭발물로 의심하는 물체는 주로 지하철역, 공항, 버스터미널 안팎이나 대중교통 안, 주요 기관 주변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주인 없이 몇 시간째 놓인 가방이다. 배낭과 여행용 캐리어, 쇼핑백 등이 대부분이다.
군경이 출동해 확인하면 대부분 오인 신고로 결론이 난다. 화약류는커녕 라이터나 부탄가스 등 발화물질, 칼 같은 위험 도구가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가방에 든 내용물은 보통 옷가지나 휴대용품이다. 지난 22일 광주의 대형 아울렛 앞 벤치에 놓여 있던 종이가방에서는 먹다 남은 도시락이 나왔다. 앞서 10일 수원 서부버스 공영차고지 버스 내 가방에는 마술용품이 들어 있었다. 이달 3일 의심 신고가 된 서울 상암동 방송사 앞 조형물 아래 여행가방은 근처를 구경하던 베트남 관광객이 놔둔 것이었다.
경찰은 오인 신고로 확인되면 가방 주인을 찾지 않고 물건을 유실물센터에 넘긴다. 경찰 관계자는 “폭발 의심물로 신고되더라도 우리가 열어서 폭발물이 아닌 게 명백해지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당국은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폭발물 의심 신고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 의심물인 경우에도 신고가 접수되면 군경 수십명이 출동해 현장을 광범위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오인 신고라면 통행에 불편이 생기고 많은 경찰 인력이 헛걸음을 하게 되는 셈이지만 만의 하나를 막기 위해선 당연히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혹시 한국도…” 테러 공포에 폭발물 의심 신고 늘었다
입력 2016-03-25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