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정태] 재벌4세 시대 공식 개막

입력 2016-03-25 18:11 수정 2016-03-25 21:36

지난 22일 종영된 SBS 50부작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최종회에서는 이방원에 맞선 비밀조직 ‘무명’의 일원인 적룡(법명)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마지막 반전을 보여준다. “사가(私家)에서 쓰던 제 원래 이름은 백달원입니다.” 백달원. 황해도 출신으로 조선 보부상단 시조로 알려진 사람이다. 행상인의 힘을 모아 조선 건국에 기여한 공로로 전국적인 상인단체의 첫 우두머리가 된다.

이런 봇짐장사를 하며 조선 말기에 부자가 된 인물이 거상(巨商) 박승직이다. 그가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 120년 역사를 지닌 두산그룹의 창업주다. 1896년 배오개(서울 종로4가)에 차린 포목점 ‘박승직 상점’이 두산 모태다. 1936년 경영에 참여한 아들 박두병은 광복 후 일본 기린맥주 공장을 인수해 동양맥주를 설립하고, ‘박승직 상점’ 간판을 두산상회로 바꿔 그룹 터전을 닦았다.

그룹은 내수 소비재 중심의 사업을 벌이다 2000년대 들어 중공업 위주로 재편됐다. 현재 재계 순위 12위다. 80년대부터 3세대인 박용곤 박용오(작고)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등 다섯 아들이 그룹 회장을 차례로 맡아 독특한 ‘형제경영’을 해왔다. 물론 2005년 ‘형제의 난’도 벌어졌지만 반란을 일으킨 둘째가 가문에서 퇴출되면서 마무리됐다.

두산그룹이 재계에서 처음으로 오너 4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장자상속 원칙에 따라 박용곤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이 25일 정기주주총회에 이은 이사회에서 의장으로 선임돼 그룹 회장직을 넘겨받은 것이다. 85년 사원으로 입사한 지 31년 만에 오른 총수 자리다.

한데 4세 세습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다. 그런 만큼 경영능력을 보여주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재무구조가 악화된 주력 계열사들의 위기를 극복하는 게 당면 과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경직된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희망퇴직 대상에 20대 신입사원까지 포함시킨 데 이어 최근엔 명예퇴직 거부 직원에게 모멸적인 ‘면벽(面壁) 근무’를 시켜 질타를 받았다. 이래놓고 ‘사람이 미래다’라고 외쳤단 말인가. 처신도 잘해야 한다. 물의를 빚은 재벌 자제들의 갑질 대열에는 끼지 말아야 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순간 훅 간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