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덕환 <3> 유도 대련하다 목뼈 골절… 생명 건졌으나 전신마비

입력 2016-03-27 18:24 수정 2016-03-27 20:22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고 치료하던 때의 정덕환 장로. 얼굴 이외의 모든 부분을 쓸 수 없는 전신마비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대한유도회가 주최하는 특별훈련에 참석하느라 명륜동 도장을 찾았다. 며칠 후엔 후배들과 바닷가로 피서를 떠날 계획을 세워 마음이 즐거웠다.

몸을 푼 뒤 대련에 들어갔다. 내 짝은 1년 선배 김영환 선수였다. 나와 체급도 같고 시합도 같이 출전해 거의 친구처럼 지냈다. 둘이 붙으면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틈을 엿보던 나는 장기인 낮은 업어치기로 육중한 그의 몸을 들어 매트에 내던졌다. 이제 그는 허공을 날아 쿵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그런데 그 쿵 소리 대신 내 입에서 ‘윽!’ 하는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멀리 떨어지지 않고 육중한 몸이 내 얼굴 위로 엎어지면서 나의 목을 꺾어버린 것이다. 희미한 의식으로 웅성거림과 함께 누군가가 “목이 부러졌다”란 큰 소리가 들렸다. 난 순식간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널브러졌다.

몸에 목이 짓눌리면서 목뼈가 부러진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경추 4번 5번이 골절, 탈골된 것이다. 정신은 있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나는 횡격막 장애로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이 헐떡거렸다. 목이 부러지면 죽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급히 달려온 의사가 내 목을 두 손으로 빼니 ‘뚝’ 소리를 내면서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숨은 좀 쉬어지는데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의사는 호흡이 고르지 않고 상태가 중해 3일 이내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음을 아내에게 선고했다. 아침에 네 살 아들 재권이의 재롱을 보며 즐겁게 집을 나섰던 내가 불과 몇 시간 후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경외과 팀이 달려들어 머리를 깎고 추를 매단 뒤 바로 수술을 시작하려했는데 열이 40도까지 올라 수술이 안 된다고 했다. 진퇴양난이었다.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목 아래 전신마비로 나는 배설한 것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식물인간’, 바로 그 주인공이 내가 된 것이다. 난 몇 번이나 이것은 꿈일 것이라 여겼지만 생생한 현실이었다.

열이 내려 대수술을 했다. 이제 목숨은 건졌다고 했지만 고통은 이제부터였다. 여름이라 금방 등창이 생겨 살이 썩기 시작했고 온 전신의 통증이 나를 24시간 괴롭혔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내는 초주검 상태로 나를 간호했지만 모든 것이 역부족이었다.

우리 집은 불교집안이었다. 난 이 때까지 교회란 곳을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절에 놀러 삼아 자주 가곤 했다. 연세대가 미션스쿨이니 학점 때문에 채플에 몇 번 참석은 했지만 기독교는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종교였다.

그런데 이 전신마비의 몸이 되니 만약 신이 있다면 나를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는 없다고 몇 번이나 마음으로 울부짖었다. 가끔 찬양단이 병실로 들어와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해주는데 전혀 마음의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내저으며 쫒아버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는 내가 고통스러웠다.

이 무렵 어머니가 먼저 교회에 나가셨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던 아내도 무엇인가에 의지하고자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합동으로 내게 하나님을 전했다.

“여보, 당신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함께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어.”

남편을 돌보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아내가 전하는 복음, 그것을 차마 거부할 수는 없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