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했다. 농약 안 치고 콩 농사를 지었는데 풍년이었다. 콩을 어떻게 팔지 몰라 메주를 쑤고 장을 담갔다. 장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장독이 하나하나 늘어 이제는 300여개가 됐다. 한 해 5000만원 정도 되는 쏠쏠한 매출도 올리고 있다. 장 잘 담그는 비법을 묻자 50년째 장을 담그고 있는 베테랑은 주저 없이 답했다.
“비법 없어요. 바람과 햇살, 자연이 비법이죠.”
귀농 17년차 류재평(75) 이희순(70)씨 부부는 요즘 학생 신분이다. 강원도 양양군 농업기술센터 내 친환경대학에 입학해 유기농기능사 자격증 수업을 듣고 있다. 더 좋은 우리 장을 만들기 위해 원재료인 친환경 콩을 잘 키우기 위해서다.
양양군 현남면에서 우리농원을 운영하며 ‘우리장’을 만들고 있는 이 노부부는 젊은 시절 동대문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원단 장사꾼이었다. 돈도 꽤 벌었다. 3남매도 장성하니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30년 원단 장사에 이씨의 기관지가 나빠져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적송이 우거진 숲 가운데 있는 지금의 농원 자리다.
처음엔 마을 사람들이 돈 많고 팔자 좋은 서울사람으로 보고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처럼 텃밭에 콩을 심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콩을 수확했지만 어떻게 파는 방법도 모르고 해서 메주를 쒀 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씨는 종갓집 맏며느리였다. 시어머니는 모든 장을 집에서 직접 담그셨다. 어깨 너머로 배워 장을 담근 지 40여년. 장 담그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원단 장사 하던 때도 이씨가 집에서 담근 장을 가져가 된장찌개 집을 연 지인이 대박을 쳤을 정도다.
3000평이나 되는 밭에서 수확한 콩은 넘쳐났다. 한 해 두 해 장을 숙성시키는 장독도 늘어났다. 200㎏ 들이 장독이 어느새 300여개. 그 속에는 이 노부부가 합심해 만든 간장과 된장이 자연과 함께 숨쉬고 있다.
이씨 부부는 자신들이 키운 무농약 인증 콩에 3년 동안 간수를 뺀 불순물 없는 소금으로 메주를 만든다. 전통 방식 그대로 가마솥에서 장작불로 정성껏 만든 메주를 깨끗하게 띄운다. 이씨 부부의 장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여기에 더해지는 자연의 축복이다. 장독대의 뒤편은 병풍처럼 붉은 적송 숲이 둘러쳐 있다. 하루 종일 햇살이 비치고, 바람은 5월의 송홧가루를 실어다준다. 송홧가루는 장의 군내를 없애주고 변질 없이 잘 숙성될 수 있게 도와주는 자연 첨가물 역할을 한다. 이씨는 옛날 문헌을 보고 전통 방식을 따랐고, 영양학 교수를 찾아다니며 균종의 영양소도 검증했다. 강원도 찬 공기로 숙성돼 검은 빛깔을 띤 우리장은 요즘 말로 하면 웰빙 블랙푸드다.
부부가 매년 장을 만드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파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이씨는 “우리 장이 숙성이 오래되고 독이 300여개로 늘어난 건 의도한 게 아니라 초기에 팔 데가 없어 계속 재고가 쌓였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보다 못해 동네에서 소문난 장맛을 알고 있는 양양군이 나섰다. 양양군은 군에서 운영하는 먹거리 인터넷 사이트에 이씨 부부의 제품을 등록해줬다. 2013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전통식품대전에 참가해 인정을 받았다. 이씨 부부의 딸 정희(48)씨도 제품 마케팅을 맡았다. 웹 디자이너 전공을 살려 브로슈어를 만들고 몇몇 쇼핑몰에 상품을 올렸다. 매출액도 조금씩 늘어 지금은 매년 5000만원 정도를 번다.
“장 팔기 어려워요. 사람들이 장은 충동구매를 안 해요. 1㎏짜리 된장 한 통 사면 4인 가족이 석 달 동안 몸에 좋은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어요. 그런게 피자 한 판 정도 가격인데 그것도 아까워하더라구요.”
이씨 부부는 자신들이 만드는 장이 바이오푸드산업의 주력 상품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또 장을 팔아 큰돈을 벌려는 욕심도 없다. 그냥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있고, 몸이 좋아졌다는 구매자의 문자 한 통 받으면 힘이 난다고 한다.
이씨 부부에게는 후계자가 없다. 딸 정희씨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장 담그는 법을 알려주는데 정작 정희씨는 너무 힘들어서 싫단다. 장 잘 담그는 법 알고 싶으면 언제든 농원으로 오라는 이씨 부부는 오늘도 다정히 손을 잡고 더 좋은 바이오 푸드를 만들기 위해 수업을 들으러 간다.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된장 명인’ 70대 귀농 부부, 대학에 가다… 양양 ‘우리농원’ 류재평·이희순씨 부부
입력 2016-04-01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