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30억 개의 염기서열 비밀이 풀렸을 때만 해도 이제 모든 질병의 원인이 밝혀져서 불치병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질병이나 운명은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고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바뀌어 간다. 이를 포스트게놈이라 하며 그것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개념이 후생유전학(epigenetics)이다.
즉 후생유전학은 선천적인 돌연변이가 아닌 후천적으로 음식, 생활 습관, 스트레스 등이 DNA에 영향을 주어 사람에 대한 질병을 일으키거나 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연구하는 최신 학문을 말한다. 후생유전학의 한 분야 중 하나는 산모일 때 먹는 음식에 따라 자녀의 질병이 결정된다는 ‘태아 재프로그램(fetal reprogram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어른들이 태교를 강조하고 산모의 음식과 정서를 신경 쓰는 것이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이는 그 분들의 오랜 경험과 지혜로 내린 결론이다. 현대의학에서는 유전학적으로 이를 분명히 증명한 것이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임신한 어미 쥐에 각기 엽산의 양이 다른 음식을 먹였더니 자녀 쥐의 피부색이 검거나 얼룩무늬 혹은 희거나 노란 피부를 보인 결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아구티 쥐에서는 검거나 얼룩무늬(아롱진) 피부의 쥐를 건강하거나 오래 사는 쥐, 노란 피부의 쥐는 암, 당뇨 등 여러 질병에 걸린 쥐라 판단한다. 이 연구를 통해 산모 때 먹는 특정 음식과 스트레스 등의 환경이 후세대에 영향을 주어 질병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야곱이 장인 라반과 헤어질 때 재산을 분배하기 위해 엉뚱한 제안을 한다. 새로 태어난 양과 송아지의 피부가 아롱(얼룩)지면 자신의 것으로 하고 정상적인 피부로 태어나면 장인의 것으로 한다는 제안이다. 돌연변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적으므로 장인은 이 제안을 받는다.
그 후 야곱은 임신한 양에게 살구와 단풍나무를 먹이는데 살구는 엽산이 풍부한 대표적인 과일이다. 앞의 실험대로 엽산이 풍부한 음식을 먹은 양은 얼룩지고 검은 양을 낳고 얼룩 양은 유전적으로 우성이라 자손이 계속 얼룩 양으로 번창한다. 이런 방식으로 야곱은 라반의 양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야곱이 후생유전학의 원리를 알았을 리는 없었겠지만 임신 중에 무엇을 먹는지가 후손의 질병을 결정하는지를 경험하고 깨닫는 지혜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특징이나 질병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지기도 하지만(nature), 살아가면서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nurture).
설사 우리가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든 그렇지 않든, 매일의 일상에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음주와 흡연, 스트레스를 멀리하며 적절한 운동과 수면을 통해 더욱 건강한 몸을 만들어가는 것이 참된 지혜임을 알도록 하자.
김경철(차의과학대학교 차움병원 교수)
[김경철의 닥터 바이블] 후생유전학과 야곱의 지혜
입력 2016-03-25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