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흑인 소년가장의 ‘코리안 드림’… KBL 챔피언결정전서 맹활약

입력 2016-03-24 23:43
고양 오리온 외국인 선수 조 잭슨이 23일 경기도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 전주 KCC와의 경기에서 4쿼터에 투핸드 리버스덩크를 시도하고 있다. 잭슨은 180㎝ 단신이지만 엄청난 탄력과 스피드로 농구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였다. 한국 프로농구(KBL) 고양 오리온 소속 외국인 선수 조 잭슨(24)에게 팀 관계자 한 명이 물었다.

“조, 가장 기억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뭐야.” 잭슨은 한참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표정은 우울했다. 캐럴이 흘러나오는 연말 성탄절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요즘 전주 KCC와 벌이는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잭슨 신드롬’이 한창이다. 다혈질로 유명한 잭슨은 코트에 서면 ‘전사(戰士)’로 변한다. 상대방에겐 모든 걸 이기려한다. 농구선수로선 단신인 180㎝이지만, 엄청난 스피드와 점프력으로 장신센터 앞에서도 덩크슛을 꽂는다. 상대 선수와 ‘트래시토크(Trash Talk)’뿐 아니라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너무 흥분하면 오리온 선수단은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가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잭슨은 어린 시절 얘기만 나오면 입을 꾹 다문다. 미국 스포츠 웹사이트에서 찾아낸 각종 자료를 종합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테네시주 멤피스시 흑인 빈민가에서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졸업 무렵까지도 결석을 밥 먹듯 했다. 급기야 부모는 그를 할머니에게 맡겨버렸다. 가사를 돕고 여동생 둘을 보살펴야 했다. 중3이 됐을 때 그의 인생엔 첫 번째 기회가 다가왔다. 농구를 정식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잭슨은 그때부터 학교의 스타가 됐다. 고교 시절엔 멤피스 전체에서 ‘넘버 원’이었고, 멤피스대학에 진학해서도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1학년 때는 멤피스대를 미국토너먼트협회(NCAA) 우승으로 이끌었고,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에는 실패했다. 작은 키가 문제였다. 2014년 NBA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도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NBA 스카우팅 리포트는 “스피드가 뛰어나지만 킬러 본능이 없다. 마르고 덩치가 너무 작다”고 평가 절하했다.

잭슨은 돌고 돌아 한국행을 택했다. 할머니와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키가 작은 그는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14순위로 오리온에 턱걸이로 붙었다.

처음엔 그다지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팀플레이에 녹아들지 못했고 돌출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KBL 최고무대인 챔피언결정전에선 진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20점에 가까운 평균 득점으로 팀 승리때마다 최고 공신이 됐다.

대학시절 그의 맹활약을 지켜보던 멤피스의 한 언론은 미국 작가 윌리엄 아서 워드의 말을 인용해 “고난과 난관은 어떤 사람을 완전히 파괴해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한계를 뛰어넘어 저 멀리 달려가게도 만든다”고 썼다.

가난과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 신체적 한계…. 잭슨은 이 모두를 다 이기고 한국 코트에 선다.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 유명한 ‘내게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처음 행한 멤피스 메이슨교회 근처 출신이다.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 전 미국 법무부 장관이 함께 손을 맞잡고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을 부르며 1960년대 민권운동을 펼쳤던 곳이다. 잭슨은 “농구가 곧 나의 삶”이라며 “나와 가족을 위해 코트를 누빈다”고 했다. 그에게 정말 ‘고난은 복’이 된 게 아닐까.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