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성과주의 도입을 놓고 노사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사측은 성과주의 도입이 늦어지면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금융노조는 임금을 차별하고 쉬운 해고를 도입하려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은행산업 위기를 보는 관점에서도 사측은 은행원의 고임금체계가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노조 측은 관치금융과 일방적인 개혁 드라이브를 문제 삼고 있어 다음달 초부터 진행되는 양측의 협상은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노조, “금융산업 경쟁력 후퇴는 관치금융 때문”=금융노조는 24일 중앙위원회를 열고 “금융산업 경쟁력 후퇴의 진짜 원인은 성과주의 부재가 아니라 관치금융”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금융노조는 또 “성과연봉제의 불공정한 임금차별 강요를 거부하고, 저성과자와 관련해 취업규칙 변경요건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신입직원 임금을 깎아 채용을 늘리겠다는 사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연장근로를 금지해 신규채용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사용자협의회가 교섭요구안으로 내세운 올해 임금동결, 신입직원 초임 삭감, 호봉제 폐지 및 성과연봉제 도입, 저성과자 관리방안 등을 전면 거부한 것이다.
반면 사용자협의회는 국내 은행권의 임금 수준이 대기업보다 1.5배 높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며, 국내 은행 당기순이익은 지난 10년간 4분의 1로 줄었다는 점을 들어 호봉제 중심의 은행 고임금체계를 손질해야 한다고 본다. 사용자협의회는 최근 노조가 성과주의 도입 관련 태스크포스(TF)에 불참할 경우 금융공기업들은 개별교섭에 나설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임금체계 개편으로 은행 경쟁력 키울 수 있나=문제는 은행산업 위기의 책임을 은행원 호봉제나 성과주의 이슈로 돌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사상 최저 수준이지만 지난해 은행 이자이익은 33조5000억원 늘어났다. 반면 지난해 부실 대기업과 관련해 은행이 적립한 대손비용만 11조7000억원이었고, 외환파생 관련 및 기타영업비용 관련 손실(2조5000억원)과 자회사투자지분 손실(7000억원) 등 순익 감소 이유는 다양하다.
특히 2000년대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운 은행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우면서 고배당 기조를 이어가는 것도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업계 1위 신한금융의 경우 올해 배당금으로 약 6310억원을 결정했는데 이는 지난해 당기순이익(2조3722억원)의 26.6%에 해당한다. KB금융도 배당금으로 3786억원을 책정해 배당성향(당기순이익 대비 배당금)이 22.3%에 달한다. 국책은행으로 배당성향이 높은 기업은행은 정부 방침에 따라 2020년까지 배당성향이 40%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원의 고연봉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구조조정의 산물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규모 인력 감축과 점포 줄이기 움직임에서 은행원들은 장시간 노동을 임금 인상과 맞바꾸기했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은행원의 주5일 평균 실질근무시간(점심시간 등 제외)은 56시간으로 하루 11시간이 넘는다. 특히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 외에 연장근로한도인 주 12시간을 넘긴 비율이 95.3%에 달했다. 노동연구원은 “은행의 대형화 추구, 부문 간 경계 허물기, 판매영업 강조 등의 사업구조 변화로 은행원들의 업무가 전반적으로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임종룡표 금융개혁’의 상징인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경우 예·적금, 펀드뿐 아니라 파생상품까지 판매범위가 넓어지면서 불완전판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MB정부 때 일자리 나누기 혼란상 반복되나=사용자협의회는 노사 협상과 관련 없는 신입직원 초임을 깎아 신규채용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주요 은행 신입사원 연봉이 5000만원 수준이어서 과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신입직원 초임 삭감 카드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은행과 금융공기업 신입직원 임금을 20% 안팎으로 일괄 삭감했던 것과 같다. 당시 2009년 입사한 신입직원들은 연봉이 700만∼1000만원 삭감되면서 힘없는 청년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준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특히 신입직원 초임 삭감의 명분이었던 청년 일자리가 이후 늘었다는 뚜렷한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되레 사내 임금 차별에 따른 반발이 확산되면서 2011년을 기점으로 이런 조치는 유야무야됐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Wide&deep-‘성과주의’ 도입 진통] “은행 경쟁력 강화 시급” vs “임금 차별·쉬운 해고 안돼”
입력 2016-03-2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