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후진국… 정부 ‘완전 퇴치’ 칼 뺐다

입력 2016-03-24 22:03
시민들이 결핵 예방의 날인 24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에서 대한결핵협회 관계자로부터 결핵 예방법 등을 듣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지난해 산후조리원에서 집단적으로 신생아 결핵 감염이 발생하자 정부는 8∼10월 전국 산후조리원 종사자 전부(1만163명)를 대상으로 잠복결핵 검진을 실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3명 중 1명에 가까운 32.0%에서 양성 판정이 나왔다. 잠복결핵은 몸속에 결핵균이 있지만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다. 약 10%가 결핵으로 발병하고 전파력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 수치는 우리나라의 심각한 결핵 실태를 보여준다. 우리는 결핵 발생률과 유병률, 사망률 모두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결국 정부가 “결핵을 완전히 퇴치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정부는 24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결핵 안심국가 실행계획’을 확정했다. 내년에 어린이집·유치원·초중고교 교사와 의료기관 종사자 145만명 전원을 대상으로 잠복결핵 검진을 실시한다. 또 고교 1학년과 만 40세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해마다 생애 주기별 잠복결핵 검사를 시작한다. 2025년까지 결핵 발생률을 인구 10만명당 12명 이하로 낮춘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보건소 중심’ 체계 흔들리며 결핵 줄지 않아=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결핵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86.2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2위인 포르투갈의 발생률은 25.0명이다.

우리나라 결핵 발생은 한국전쟁 직후에 인구 10만명당 약 400명으로 최고조였다. 경제 발전으로 생활·위생 수준이 나아지면서 줄었지만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공적인 관리 소홀이다.

특히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실시 이후 보건소 중심의 관리 체계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결핵이 확산될 틈이 커졌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다만 2013년 ‘1차 결핵관리 종합계획’ 수립 이후 결핵 신환자(새로 발견된 환자)는 다소 줄고 있다. 지난해 10만명당 신환자는 63.2명으로 최근 15년 사이 최저다.

◇교사·의사·간호사 전원 검진에 수백억원 필요=내년부터 고교 1학년생 대상 건강검사 항목에 잠복결핵 검진이 추가된다. 발병이 급격히 증가하는 만 15세 시기를 집중 관찰하겠다는 취지다. 만 40세 대상 생애 전환기 건강진단 검사에 잠복결핵 검진을 추가하는 것은 노년층 결핵 발병을 미리 막겠다는 차원이다. 이밖에 내년부터 징병 신체검사 시 잠복결핵 검진을 실시한다. 결핵 발병률이 높은 흡연·당뇨·저체중·알코올중독 등 위험집단에는 검진을 적극 권고키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어린이집과 각급 학교·의료기관 종사자 145만명 모두를 대상으로 잠복결핵 검진을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관련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실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모든 교사와 의사·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검사하려면 수백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핵 퇴치 목표를 너무 높게 잡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2020년까지 목표인 ‘10만명당 50명 이하’도 달성이 쉽지 않다.

정 장관은 “정부 계획대로 잠복결핵을 잘 관리하면 가능한 현실적 목표”라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