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재중] 이제 국민들이 나서야

입력 2016-03-24 17:47

오랜만에 대한민국 헌법을 펼쳐봤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은 전문과 10장으로 이뤄져 있다. 제1장 총강의 제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고, 1조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돼 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근거조항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치권에선 이 헌법 조항이 새삼 다시 거론되고 있다. 원칙이 통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승민 의원이 23일 밤 새누리당 탈당 회견을 하면서 헌법 제1조2항을 언급했다. 그는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며 “제가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뿐이고 제가 믿는 것도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국회법 파동으로 원내대표직을 사퇴할 때는 헌법 제1조1항을 내세웠다.

헌법은 우리나라의 최고 규범이다. 대통령이든 공천관리위원장이든 누구도 헌법을 넘어설 수는 없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헌법에 따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위임받은 권력을 잘못 행사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거둬들여야 한다. 정치인들이 항상 국민을 두려워하고 민심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민심이 떠난 정권은 불행한 결말을 보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국민의 비판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오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향식공천이나 완전국민경선제 등 허울 좋은 구호만 난무할 뿐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이번 총선만큼 막장공천이 판쳤던 적은 없었다. 공당이 당헌·당규에 따라 공천을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진박(眞朴·진짜 친박근혜)’이냐 ‘비박(非朴·비박근혜)’이냐가 공천기준이 되고 여론조사 결과나 당원들의 요구는 뒷전이다. 컷오프(공천배제)된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이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자신의 지역구를 여성 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한 결정에 대해 효력을 정지해 달라고 법원에 낸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졌다.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해당 지역의 공천 효력은 정지된다.

더불어민주당도 ‘친노패권주의’와 ‘운동권 세력’ 청산을 명분으로 지역 여론과는 무관하게 공천의 칼날을 휘둘렀다. 국민의당은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의 측근들이 비례대표 당선권에 배치되면서 나눠먹기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야 모두 염치없는 정치를 하면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국민이 나서야 한다. 헌법 제2장(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권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지만 의무이기도 하다. 4월 13일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들이 유권자로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과 정당은 표로 심판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선거를 통해 민심이 반영되고 그에 따라 정치권이 재편되는 게 맞는다. 다수의 침묵하는 의견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투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고서 정치권만 탓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냉소주의야말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장애물이다.

올해 총선을 시작으로 내년 대통령선거, 2018년 지방선거까지 전국적인 선거가 3년 연속 진행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권에 분명한 시그널을 보내야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도 국민의 편에서 치러질 수 있다. 그 결정은 국민의 손에 달렸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