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마당을 쓸고 대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가족들 모두 아침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으려면 대문 앞에 바가지를 든 거지할머니가 나타났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따뜻한 밥과 반찬을 할머니의 바가지에 담아드린 뒤 아침밥을 드셨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혼자 말씀으로 “그 노인이 요즈음 왜 안보이지. 어디 아픈가? 밥이 다 식는데…”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부엌의 부뚜막에 놓아두신 밥 한 그릇이 그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눈치 챘다.
이틀쯤 지난 아침, 병색 짙은 모습으로 할머니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마루로 모셔 와서 따뜻한 밥과 국을 차려드렸다. 무척 배가 고팠는지 고개를 숙인 채 쉬지 않고 밥을 드셨다. 어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왜 이리 힘들게 됐나요?” 하고 물으셨다. 그제야 수저를 멈추고 전쟁 때 남편과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데다 몸도 병들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말을 멈춘 후 때에 전 저고리소매로 눈물을 한 번 훔치고 다시 밥을 먹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혀를 쯧쯧 차시며 안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입던 옷 한 벌을 들고 나오셨다. “제가 입던 옷인데 깨끗하게 빨아 놓은 거니 입으셔요”라면서 보자기에 싼 옷을 할머니 옆에 밀어 놓으셨다. 할머니가 밥을 다 드신 후 수저를 놓자 어머니는 부엌에 가셔서 숭늉 한 그릇을 가져오셨다.
“혹시 교회에 가본 적 있어요? 하나님을 한 번 믿어 보실래요? 교회에 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요. 그곳에서는 가난한 사람한테 먹을 것과 옷도 줘요. 내일이 주일인데 함께 가보실래요?”
할머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내일 오금다리 앞에 있는 교회에서 만나요” 하며 약속을 하셨다. 옷을 싼 보자기를 할머니한테 안겨주며 “잠깐만요, 제가 신던 고무신도 드릴게요”라고 하시면서 보자기를 풀어 깨끗이 닦아놓은 흰 고무신 한 켤레도 넣어주셨다. 할머니가 일어서자 어머니가 “내일 꼭 이 옷 입고 오세요”라며 약속을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하룻밤 지나 주일 아침이 되어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을 때 그 할머니께서 어머니가 입던 옷을 입고 앉아 계셨다. 어머니가 손을 잡고 “잘 오셨네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옆에 있던 나를 보고 빙긋이 웃으셨다. 나는 아침마다 동냥 하러 온 할머니를 더럽다고 저만치 피하곤 했었다. 하지만 교회에 앉아 있는 할머니는 거지가 아닌 이웃에 사는 따뜻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이후 주일마다 교회에서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반년쯤 지났을까, 할머니가 안 보여 어머니께 여쭤보니 이미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니 어머니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고귀했는가를 깨닫게 된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하나님의 뜻을 헌신과 사랑으로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셨다. “내가 먹고 남 주려면 못 주는 것이다. 먼저 주고 남는 것으로 내가 먹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교훈이고 진리였음을 깨닫는다. 불쌍한 자를 위한 어머니의 깊은 배려와 사랑은 지금 이 시간도 멈출 수 없는 감동의 메아리로 내게 남아 있다.
박상희 화가 (서울교회 권사)
◇약력=△서양화가 △미국 아카데미 오브 아트 신시내티칼리지 △‘MBC미국’ 개국 한국미술 대표작가 초대전 등 △갤러리 푸른산 대표 △대치동 서울교회 권사
[따뜻한 밥 한 끼-박상희] “먼저 주고 남는 것 먹어라”
입력 2016-03-24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