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narcissus)는 제주도 노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제주 야생화 가운데 하나이다. 12월 한겨울 시작과 함께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여 이듬해 3월까지 피고 지기를 수차례 한다. 제주 수선화는 그 꽃 모양이 또한 독특하다. 바깥쪽 흰 꽃잎들 위로 노란 꽃잎이 솟아 있고 그 안 사이로 또 흰 꽃잎이 길게 뻗어난 겹꽃이다. 고결하고 순수한 정취를 자아내는 그 모양새와 추위를 견디는 특성이 문득 에델바이스(Edelweiß)를 연상케 한다.
추사 김정희(1786∼1856)도 제주에서 들판을 가득 매운 수선화 풍경을 보고 ‘마치 구름이 넓게 펼쳐진 듯, 눈이 하얗게 내린 듯하다’며 감탄하였다. 그가 뭍에서는 귀하여 구하기 힘든 수선화를 제주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불행한 인생 여정 덕분이었다.
추사는 선조 대대로 한양 중앙 정치의 요직에 있었던 가문에서 태어나 높은 벼슬뿐만 아니라 조선 중후기 예술과 학문을 대표하는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도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아무 죄 없이 정쟁의 희생물이 되었고, 태장을 맞아 반죽음 상태에 이르렀다. 당시로는 절해고도(絶海孤島) 제주로 유배형을 당했다. 그는 수선화를 소재로 한 한시를 지으며 고달픈 유배생활을 달랬다.
“푸른 바다 파란 하늘 한 결 같이 웃는 얼굴 신선의 맑은 풍모 마침내 아끼지 않았어라 호미 끝에 캐어 함부로 버려진 것을 밝은 창과 깨끗한 책상 사이에 고이 모시네.”
그는 뭍에서는 보기 어려운 명물이 제주도 섬 토착민에게는 밭농사에 쓸모없어 갈아엎어지고 가축의 먹이가 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호미 끝에 캐어 함부로 버려진 꽃은 어떤 사람의 보살핌 없이는 다시 회복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갈가리 찢겨 뒤엎어지고 제자리를 찾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힘없이 말없이 당하기만 하는 수선화의 수난에 슬프게 감정이입 되었다.
하지만 추사의 시선과 의지는 남달랐다. 그 현실적 결론을 ‘시들어 죽었네’나 ‘사람과 짐승의 발에 밟혔네’로 체념하지 않았다. 비참한 현실의 이미지를 은유 세계에서 “밝은 창과 깨끗한 책상 사이에 고이 모시네”로 바꾸었다.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자 문제 극복을 위한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마침내 추사는 8년 3개월의 긴 유배시간을 헤치고 해배를 맞아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부활절을 맞았다. 십자가 사형을 당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시고 인간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셨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제자리를 찾으셨다(행 4:12).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
추사에 비할 바 없이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선한 기적들이었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리셨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과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원했다. 그의 피 값을 두려움 없이 자신들과 자기 자손들에게 돌려달라고 외치기까지 하였다.
영원한 진노의 형장으로 당당하고 무모하게 들어가는 충격적인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예수님의 부활은 고난을 통한 승리이다. 그는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다(요 1:29). 그래서 영혼의 제자리, 관계의 제자리, 건강의 제자리, 일의 제자리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우리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셨다. 기쁘고 감사한 부활절을 맞았다. 내 안의 심적 이미지를 바꾸어보자. 예수님 다시 오셔서 만물이 제자리를 얻게 될 영광스러운 날이 어떠할지 마음껏 상상하자. 임춘택(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임춘택의 문학과 영성] 만물은 제자리 찾기를 갈망한다
입력 2016-03-25 17:38 수정 2016-03-25 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