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23일 당의 공천을 정면 비판하며 홀로서기에 나섰다. 자신과 측근들의 공천 학살을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완전히 대척점에 섰다. 유 의원은 탈당으로 자신의 정치 인생 최대 승부수를 던졌고, 총선 승패를 가를 핵으로 부상했다.
유 의원은 이날 밤늦게까지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를 지켜보다 결국 탈당을 결정했다. 당이 아닌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심판을 받겠다는 뜻이다. 그는 기자회견을 끝낸 뒤 오후 11시20분쯤 대리인을 대구시당에 보내 탈당계를 제출했다.
유 의원은 이번 탈당의 명분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을 내세웠다. 그는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며 “제가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뿐이고 제가 믿는 것도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국회법 파동으로 원내대표직을 사퇴할 때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 1항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유 의원은 지난 15일 이후 8일간 침묵하며 충분한 명분도 쌓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칩거가 길어지는 동안 “공관위가 당헌·당규에 위배된 결정을 내렸다” “지도부가 옹졸했다”는 여론도 형성됐다. 공관위의 결정 유보가 ‘치졸한 고사(枯死) 전략’으로 치부되면서 당 내부에선 프레임 싸움에서도 유 의원이 우위에 섰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유 의원은 특히 공관위의 정체성 시비에 대해 “개혁의 뜻을 함께한 죄밖에 없는 의원들을 쫓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고 성토했다. 그는 “공천을 주도한 그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애당초 없었고 진박·비박 편 가르기만 있었을 뿐”이라며 이한구 공관위원장과 지도부를 정면 겨냥했다.
유 의원의 탈당이 새누리당 공천의 불공정성을 상징하면서 수도권 판세도 요동칠 것으로 예측된다. 당 안팎에선 이미 이른바 ‘무소속 연대’의 파급력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빗발친다.
유 의원 역시 “저와 뜻을 같이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경선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동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동지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와 보수개혁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지를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공천 배제된 유승민계 의원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것이어서 연대 가능성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선 다만 유 의원이 무소속 연대를 전면에 내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됐다. 텃밭에서 컷오프된 의원들은 무소속 출마 시 승산이 낮고, 격전지에서는 여당 표 분산으로 야당에 유리한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희국·이종훈 의원은 탈당계를 제출하지 않아 사실상 불출마 결정을 내렸다. 무소속 연대가 자칫 ‘반박근혜’ 구도로 부각될 수 있어 새누리당 텃밭 승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친박(친박근혜)계 일각에선 유 의원 탈당으로 수도권 판세가 흔들릴 경우 선거 막판 오히려 보수층 결집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내놨다. 유 의원의 경쟁자인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당의 뜻을 따르겠다”며 탈당하지 않았다.
대구=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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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1조 2항 거론
입력 2016-03-24 00:40 수정 2016-03-24 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