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95년 前 중국 인민들에 대한 일본 지식인 고민

입력 2016-03-24 18:41
맞다. 저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사진)는 익히 알고 있는 일본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이 기리는 그 주인공이다. 저자의 빛나는 이력 때문에 우선 군침이 돌만한 책이다. 생애의 유일한 해외여행에 대한 기록, 그리고 중국 안에서 벌어진 역전극도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다.

아쿠타가와는 1921년 봄부터 여름까지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 특파원으로 상해와 북경, 소주와 항주, 남경 등 주요 도시와 명승지를 여행했다. 그는 과거 중국에선 자신의 나라를 멸시하는 내용의 기행문을 쓴 작가라며 부정돼 왔다. 그러던 게 2000년대 들어 1920년대 초기 중국 사회를 명확히 파악했다는 인식이 퍼지며 중국 내에서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중국을 사랑해 중국 인민이 겪고 있는 고난에 동정하며 기행문을 썼다는 해석이 나온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양파 껍질 마냥 여러 겹의 해석을 낳는다. 처음엔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웃지만 곱씹다보면 눈이 아려온다. 저자가 중국에서 받은 첫 인상이라고 밝힌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상해의 한 카페에서 만난 꽃 파는 노파에 관한 얘기다. 영국군 해군 병사들이 여급들과 난잡한 춤을 추고 있는 그곳에 노파가 꽃을 팔러 들어왔다. 좀 전에 그가 ‘뿌야오(필요없다는 뜻의 중국 말)’라며 손사래 쳤던 그 노파다. 술 취한 영국군 해군 병사들이 난폭하게 문을 밀치며 들어오면서 노파가 파는 장미꽃 바구니가 떨어져 짓밟혔지만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장면이 안쓰러웠던 아쿠타가와의 동행 영국인 친구가 동전을 줬다. 카페를 나선 후 한참 걷고 있는 그들을 누군가 좇아왔다. 좀 전 그 노파가 걸인처럼 다시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그는 상해의 유명한 찻집 ‘호심정’ 연못의 지저분함과 거기에 오줌을 갈기는 중국인을 전하며 노대국의 ‘신랄한 상징’이라고 조롱한다. 지식인층의 세속적 타협도 슬쩍 비꼰다. 그러나 중국보다 먼저 근대화한 일본 지식인의 우월 의식으로만 끝나지 않는 게 여행기가 갖는 미덕이다. 아쿠타가와는 중국인의 반일 의식도 놓치지 않는데, 소주에서는 반일 낙서를 해학적으로 묘사하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풀어낸다. 일본 정부의 검열을 의식하면서도 일본인 병사의 중국인 여학생 강간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단순히 감상적 여행기가 아니다. 서구 열강에 맥없이 무너지는 중국, 서양을 닮아 열강이 되고자 하는 일본의 야심 등 격변하는 20세기 초반 동아시아를 사는 지식인의 고민이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지만 여행기라는 부담 없는 형식에 실렸기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곽형덕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