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공천 문제로 불거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사퇴 소동이 마무리됐다. 중앙위원회의 비례대표 순번 변경에 불만을 품고 당무를 거부했던 김 대표는 23일 “초창기 국민에게 약속한 바대로 모든 힘을 다해 이 당의 기본적인 방향을 정상화시키는 데 노력하겠다”고 잔류를 선언했다. 김 대표의 잔류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20일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김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를 정점으로 한 친노(親盧)가 한 발짝씩 물러나 미봉한 것에 불과하다.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김 대표와 친노의 정체성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양측의 갈등은 언제든지 또 불거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총선이 끝나고 대선에 임하면서 현재와 같은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고 친노를 정면 겨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대표의 배수진에도 비례대표 명단이 원안이 아닌 사실상 중앙위원회 안대로 결정됨으로써 김 대표의 리더십은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더민주의 한계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패권주의 청산과 외연 확대를 목표로 김 대표를 영입했음에도 도로 친노패권의 과거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친노 입장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표 비판에 앞장섰던 인사를 당선 안정권에 배치한 김 대표의 비례대표안을 좌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와 운동권 출신들이 후순위에 배치된 것도 불만이었을 테다. 그렇다고 대표와 상의 한마디 없이 친노가 주축이 돼 힘으로 이를 뒤집은 건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친노가 더민주의 진짜 주인이라는 걸 보여준 꼴밖에 안 된다. 이래서는 그동안 김 대표가 고군분투해서 벌어놓은 점수를 깎아먹기 십상이다.
과거 권위주의시대나 통했던 운동권 사고방식으로는 4·13총선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어렵다. 김 대표가 왜 전문가 그룹을 비례대표 상위순번에 배치했겠는가. 더민주를 운동권정당에서 정책정당, 경제정당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것 아니었나. 싫든 좋든 더민주는 김 대표를 중심으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다. 친노가 변해야 더민주가 산다.
[사설] 더민주 한계 드러낸 김종인 사퇴 소동
입력 2016-03-23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