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과 ‘복면가왕’.
평소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다. 둘 다 시청률이 10%를 훌쩍 넘는 인기 프로다. ‘정글’이 오지에서의 생존을 다루는 반면, ‘복면’은 2주에 한 번씩 우승자를 가리는 가요 경연이다. 이런 형식 말고도 두 프로는 시청자에 대한 접근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글’은 출연자들의 민낯 공개가 원칙이다. 몇 개월 전 유명 걸그룹 멤버의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특히 평소 노래 부를 때 봤던 그 눈이 아니었다. 이 여가수가 국내로 돌아와 멤버들과 함께 노래하는 TV 화면을 봤는데, 화장발로 잠시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복면’은 출연자의 얼굴이 철통같이 가려진다. 복면 뒤 출연자를 맞히려는 판정단과 들키지 않으려는 출연자 간 신경전이 볼만하다. 목소리나 몸짓으로 쉽게 출연자를 추정케 되면 재미가 반감되기도 한다.
그런데, 둘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아무래도 감동을 주는 지점 같다. ‘정글’에 나온 연예인들에게는 가식(假飾)이 없다. 멋진 무대 의상도 없고, 짙은 화장도 할 수 없으니 맨몸과 맨얼굴이 금방 드러난다. 당장 먹을 것을 구하고 잠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탓에 예쁜 척, 고상한 척하기도 쉽지 않다. 얼마 전 모닥불에 둘러앉은 출연자들은 ‘가족’이라는 말이 나오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많은 시청자들은 감정이입이 됐다.
‘복면’은 정반대 상황에서 가식이 사라진다. 복면을 벗은 다음 ‘왜 출연을 결심하게 됐느냐’고 물으면 “지금 보이는 내가 아닌, 진정한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답이 곧잘 돌아온다. 수십 년 전 대학가요제에서 노래한 후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는 중년의 여배우도 있었다. “오랜 꿈을 이뤘다”며 행복해하던 주름진 그녀 얼굴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솔직히 그녀가 가요제 출신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우리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진한 울림을 느낀 것도 그의 진면목(眞面目)을 봤기 때문이다. 말도 하지 않고, 표정도 읽을 수 없고, 생각도 알 수 없는 인공지능을 상대로 이세돌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뒷목을 잡고, 눈을 찡그리며,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거짓으로 꾸미지 않고 진실하게 다가오는 인간의 모습은 분명 기계보다 아름답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4·13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가식과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연일 이전투구 중이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국민만 보겠다.” 이 거짓 복면 뒤에 숨겨진 맨얼굴을 직시해보자. 가진 권력을 조금도 내놓지 않겠다는 아집과 독선이 똬리를 틀고 있다.
‘정글’과 ‘복면’이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건 한마디로 출연자들이 본인을 내려놓아서다. ‘정글’에서 출연자들은 그간 연예인으로서 쌓아왔던 가공된 이미지를 버렸다. ‘복면’에 나온 가수들은 예능인이 아닌 ‘진짜 가수(歌手)’가 되기 위해 나왔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진정성이 전해지면서 방청객과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예능 프로만도 못하다.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인은 눈을 비비고 찾아도 찾기가 쉽지 않다. 금배지가 눈에 아른거리니 체면이고 양심이고 거들떠보지 않는다.
하지만 인공정치는 진정성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당장은 속일 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여의도의 정글은 오로지 약육강식만이 있는 그들만의 정글에 불과하다. 여의도의 복면은 거짓을 숨기기 위한 장치에 그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금, ‘진짜 정치인’은 어디에 있는가.
한민수 문화체육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시각-한민수] ‘정글의 법칙’과 ‘복면가왕’
입력 2016-03-23 17:41 수정 2016-03-23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