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서 22일(현지시간) 발생한 동시다발 테러는 평범한 시민들로 가득 들어찼던 공항과 지하철을 순식간에 지옥으로 탈바꿈시켰다. 여행의 부푼 꿈에 출국을 대기하던 이들과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려던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출국장 바닥과 지하철 계단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야 했고, 이들의 사망 소식은 평화롭기만 하던 유럽의 3월을 ‘비극의 아침’으로 만들었다.
◇두 차례 폭발로 전쟁터로 변한 출국장=이날 오전 8시쯤 자벤템 국제공항 출국장 주변은 탑승 수속을 하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특히 미국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 수속 데스크 앞에서는 짐을 부치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출국장 출입구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로 누군가 아랍어를 외치기 시작했다. 줄을 서 있던 승객들이 누가 외치는지 돌아보려는 순간 총소리가 들렸다. 테러범이 줄을 서 있는 승객들을 향해 무차별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일부 승객이 그 자리에서 쓰려졌고, 다른 승객들이 현장에서 달아나기 위해 큰 혼잡이 빚어졌다.
승객들이 어수선하던 사이 갑자기 큰 폭발이 터지면서 파편이 공항 곳곳에 퍼져나갔다. 승객들이 정신을 차릴 틈도 없는 사이 잠시 후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두 차례 폭발 이후 수십명의 승객이 곳곳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아예 미동을 하지 못하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안토니 델루스는 “첫번째 폭발은 짐을 부치는 카운터 바로 근방에서 발생했고, 두 번째 폭발은 인근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폭발음의 영문을 몰라 출도착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떨어진 줄 알았는데 곳곳에 파편이 날리고 물건들이 나뒹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폭발로 인해 출국장 가로 세로 1m 정도의 커다란 천장 마감재가 떨어지고 천장 일부가 붕괴되면서 크게 다친 승객도 많았다. 벨기에 현지 언론은 총격과 폭발, 건물 붕괴 등으로 인해 현장에서 즉사한 사람만 최소 14명에 달하고 120여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다행히 근처를 벗어난 승객들은 혼비백산, 앞다퉈 탑승장을 빠져나갔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폭발이 워낙 컸던 탓에 출국장 천장 위로 솟구쳐오르는 검은 연기가 브뤼셀 시내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유럽연합(EU) 직원들 노린 지하철역 테러=공항 테러가 발생한 지 1시간여가 지난 오전 9시11분에 브뤼셀 시내 말베이크 지하철역에서 또 다른 테러가 발생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이 역을 이용하는 사람 상당수는 인근 EU 본부 사무실 단지에서 일하는 직원들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폭발은 역에서 기차 한 대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플랫폼 인근에서 발생했다. 현장을 지나던 알렉산더 브란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폭발 소리 자체가 워낙 커 놀랐다”면서 “폭발 순간 현장에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단 한 차례 폭발이었지만 워낙 사람들이 밀집된 탓에 최소 20명이 숨지고 106명이 다치는 등 사상 규모가 컸다.
폭발 이후 역 일대가 암흑으로 변했고, 비상등을 이용해 승객들이 앞다퉈 내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피에르 메이스 브뤼셀 소방 당국 대변인은 AFP통신에 “폭발 이후 혼란 그 자체였다”며 “피 흘리는 부상자들을 서둘러 지하철역 밖으로 빼내는 데 혼신을 다했다”고 말했다. 당국은 지하철 내부가 어두워 사태 수습이 늦어지면서 오후 들어서야 사상자 규모를 발표할 수 있었다.
테러 이후 EU는 추가 테러 가능성을 우려, 이미 출근한 직원들의 경우 EU 건물 단지 내부에 머물 것을 지시했다. 미처 출근하지 못한 직원들에게는 출근하지 말라고 긴급히 통보했다. 또 폭발물 설치 등에 대비해 EU 건물 주변에 대해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브뤼셀은 시내 전체의 지하철과 열차 등 대중교통 운행을 중단하고 경찰이 테러 연루자 검거를 위해 시내 곳곳을 차단한 데다 가택 수색까지 펼치면서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현지 언론들은 “브뤼셀 시민들이 추가 테러 가능성 때문에 공포에 질려 있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여행·출근길 시민들 ‘비극의 아침’
입력 2016-03-22 22:31 수정 2016-03-23 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