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에서 22일(현지시간) 발생한 연쇄 테러는 공항과 지하철역 등 민간인 유동인구가 많은 이른바 ‘소프트 타깃’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지난해 11월 발생한 파리 연쇄테러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일상 속 익숙한 공간에서 폭발이 일어나 희생된 벨기에 시민들의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유럽인들은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패닉에 빠졌다.
스테판 로프벤 스웨덴 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에서 연쇄테러가 발생한 것은 “유럽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라며 “개방된 사회를 겨냥한 테러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테러 대상 중 하나인 말베이크역은 EU 집행위원회, EU 이사회 등 주요 건물이 ‘코앞’에 위치하고 있어 유럽에 대한 의도된 위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브뤼셀 테러에 대해 현재까지 자신들의 소행임을 자처한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벤템 공항 폭발 당시 아랍어 외침이 들렸다는 목격자의 증언에 비춰볼 때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로 추정된다. 특히 나흘 전 말베이크와 지척인 몰렌베이크에서 이슬람국가(IS) 소속의 파리 테러 주범인 살라 압데슬람이 체포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IS의 보복 테러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압데슬람의 체포 직후 벌어졌다는 시점과 체포 이후 테러세력과 반테러 공권력 간 긴장감이 지속됐다는 점 등 기본적이고 중요한 몇 가지 포인트를 고려할 때 IS 테러리스트들의 복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또한 “압데슬람에 의해 누설될 정보를 통해 수사 당국이 검거 작전 등 행동에 나서기 전 빠른 시점에 테러 네트워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면서 압데슬람의 공모자들과 연계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일간 인디펜던트 아일랜드 역시 국제 보안전문가들을 인용해 “공항이라는 높은 수준의 보안에 대한 위험을 감수했다는 점에서 ‘꽤나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이며, 압데슬람의 체포에 대한 보복으로 보고 후속 테러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IS의 테러 사정권이 전 세계로 본격 확장된 지난해부터 군부대나 경찰 등 공권력이 아닌 도심의 일반 시민과 관광객 등 소프트 타깃을 노린 대규모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130명이 숨지고 350여명이 부상한 프랑스 파리 테러는 IS가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있는 소프트 타깃 테러의 전형을 보여준다. 당시 9명의 IS 조직원들은 바타클랑 극장과 카페, 식당, 축구장 등에서 일반 시민을 겨냥해 총기를 난사하고 자살 폭탄을 터뜨렸다.
IS는 지난해 3월 튀니지 바르도 국립박물관에서 총기를 난사해 21명을 살해했고 10월에는 터키 앙카라 기차역 광장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해 9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같은 달에는 러시아 여객기를 격추해 탑승객 224명 전원이 사망하는 등 박물관, 역 광장, 비행기 등 일반 시민들의 일상 속 공간인 소프트 타깃을 타격하는 테러로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면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IS는 난민 위기의 중심인 터키 이스탄불에서만 1월과 3월에 연이어 자살폭탄 테러를 벌여 수십명이 희생됐다.
소프트 타깃에 대한 무차별 테러의 목적은 자신들에 대한 공포심 조성과 IS 격퇴를 위해 뭉쳐온 서방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특히 파리에 이어 브뤼셀까지 서유럽이 잇따라 테러에 노출돼 ‘유럽 전역 어디든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IS의 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전면전보다 소규모 인원과 적은 비용으로 서방 세계 한가운데를 타격해 물질적·정신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힐 수 있음이 입증되면서 소프트 타깃 테러는 향후 꾸준히 벌어질 전망이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브뤼셀 폭탄 테러… 파리처럼 이번에도 소프트 타킷 ‘유럽인들 패닉’
입력 2016-03-22 22:29 수정 2016-03-23 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