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친노와 대결서 압승… 당은 깊은 상처

입력 2016-03-22 22:27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2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비대위 전체회의를 마친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문재인 전 대표가 이날 오전 김 대표의 사퇴 의사 철회를 설득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김 대표 자택을 방문한 뒤 집을 나서는 모습. 이동희 구성찬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말 한마디에 제1야당이 휘청거렸다.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김 대표가 사퇴를 시사하자 비대위원들은 ‘반성문’을 쓰고, 문재인 전 대표는 사실상 ‘백기투항’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김 대표의 독불장군식 불통 리더십에 대한 불만도 점차 커지고 있다.

◇金측, “이번에 밀리면 끝난다”=김 대표는 22일 대표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지도부 흔들기’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김 대표는 전날 비대위가 자신의 비례대표 순번을 14번으로 조정하는 중재안을 마련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측근에게 사퇴 의사를 전했다. 김성수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어제 저녁까지 그런(사퇴) 말씀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지난 1월 취임 이후 김 대표는 공천혁신안을 수정하고 비례대표 추천권 등 비대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과정에서도 당내 저항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주류 진영의 조직적인 저항에 비대위의 비례대표 공천안이 무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게다가 김 대표의 ‘셀프 공천’과 관련해 “비례대표 5선으로 기네스 기록을 세우려는 것이냐”는 등의 감정적인 비판도 쏟아졌다.

이 같은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여긴 김 대표는 결국 당무 거부와 사퇴 시사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도 이번에 밀리면 끝난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친노(친노무현)나 운동권에 주도권을 넘겨주면 당이 더 이상 변화된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그룹별 투표’로 중앙위원회 논란을 촉발해 놓고 자신의 비례대표 순위를 조정해 비난 여론을 돌리려 했던 비대위를 향한 경고라는 해석도 있다.

김 대표와 제1야당의 ‘힘겨루기’는 일단 김 대표의 압승으로 보인다. 비대위원들은 “대단히 자존심이 상했고, 모욕적으로 느꼈다”는 김 대표 앞에서 “당을 계속 이끌어줘야 한다” “반성한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결국 비대위원들은 김 대표를 2번에 배정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김 대표 자택까지 찾아갔다. 급거 상경한 문 전 대표에게 총선 이후 역할을 확답받은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한 당직자는 “침묵하던 문 전 대표를 서울로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김 대표의 당내 위상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퇴 가능성 배제 못해=김 대표는 오후 비대위회의를 주재하고 일부 전략공천 지역을 확정하는 등 사실상 당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비례대표 순번 확정을 비대위에 일임하면서도 본인의 번호는 비워두라고 해 사퇴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 놨다. 김 대표가 “조금 더 고민할 시간을 갖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전격적인 사퇴가 이뤄질 수도 있다. 당내에서는 김 대표의 ‘벼랑 끝 전술’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한 당직자는 “김 대표는 원하는 것을 다 얻었을지 모르겠지만, 당이 받은 상처는 어떻게 회복해야 하느냐”며 “자신만 옳다는 식의 불통 리더십으로는 이 당을 이끌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승욱 고승혁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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